"넷 달만 줘"
술집 화장실 거울에 비친 수진의 눈동자는 초점이 흔들렸다. 그가 뒤에서 슬며시 허리를 감쌌다. 왼손엔 그녀가 모르는 여자의 립스틱 자국이 묻어 있었다.
넷 달만 줘. 그 다음은 아무도 몰라.
그 말이 귀에 붙었다. 수진은 거울 속 자신에게 물었다. 이게 뭐지.
욕망의 해부
38살 남자들은 특별했다. 아직 40대는 아니지만 30대 후반의 끝자락. 언제든 싸고 갈 수 있는 인생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그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더 강렬했다. 시간이 짧을수록 욕망은 날카로워진다. 4개월은 딱 좋다. 결혼 생각, 미래 계획, 경제력 검증 — 이 모든 짐을 덜어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
나도 너도 여기까진 줄 알았으면 좋겠어.
그건 선언이었다. 사랑의 반대말이 싫증이 아니라 계산임을 알려주는 신호탄.
그녀들의 4개월
민주, 29살 퍼블리시스트
"4개월이면 딱 좋았어." 민주는 얼음물을 홀짝였다. "세 달은 더 뜨겁게, 한 달은 서서히 식혀. 그게 우리 계약이었죠."
그녀는 그의 정관장 사진첩을 봤다. 과거 여자들과의 4개월마다 찍었던 사진들. 똑같은 포즈, 똑같은 미소. 그는 사진 뒤에 날짜를 적어놨다. 2018.03-2018.07. 2019.01-2019.05.
나도 그 목록 속 한 줄이 되고 싶었어요.
민주는 왜 그랬을까. 아마도 확실함의 유혹이었을 것이다. 끝이 정해진 관계는 시작부터 안전하다. 실패할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이유도 없었다.
채원, 35살 와인 소믈리에
와인 바 뒤편 창고에서 채원은 그의 목뒤를 잡았다. 그녀는 이미 두 번의 이혼을 겪었다.
4개월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 인생에 끼어들 생각 없어.
그냥 네가 쉴 수 있는 작은 섬이 되고 싶어.
채원은 그 말에 울었다. 정말로 섬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도 자기 인생에 대해 묻지 않는, 그냥 내일이 없는 섬.
그러나 넷 달째 되던 날, 그는 갑자기 사라졌다. 이케아 장바구니에 넣어둔 커피잔, 함께 보려던 영화 티켓 예약 — 모두 남겨두고.
채원은 며칠을 울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상처가 아니라 공허함이었다. 마치 예정된 죽음을 지켜본 듯한 담담함.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38살 남자의 4개월은 마약이었다. 짧고 강렬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끝난다는 약속.
우리는 모두 시간에 쫓긴다. 결혼 시계, 출산 시계, 커리어 시계. 그 시계들이 똑똑똑 소리를 내며 다가올 때, 4개월의 단절은 달콤한 도피처였다.
너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 없어. 나도 그래. 그냥 지금만큼만.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은 미래를 약속하는 감정이다. 그들이 주는 건 과거 없는 현재였다.
38살 남자들은 이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잔인했다. 자기들도 모르는 척하면서 말이다.
마지막 질문
거울 앞에 선 수진. 립스틱을 다시 그리면서 문득 든 생각.
4개월 후에 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똑같은 말을 할 그를 생각하면, 내 가슴이 먼저 떨려오는 건 왜일까.
사랑이냐 독이냐고 묻지 마라. 네가 삼켰을 때 이미 정해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