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숨을 고르는 그녀의 등이 떨렸다. 뜨거웠던 피부가 식어가는 순간, 남편 민석이 머리카락 사이로 속삭였다.
"당신도 나한테 똑같이 배신했지?"
그 말에 그녀는 몸을 움찔 떨었다. 습한 공기를 가르던 정적. 섹스는 한참 전에 끝났지만 둘 사이에선 무언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잠긴 문 뒤의 타는 냄새
배신을 용서했다고 해도 침실은 다시 같이 쓰는 게 아니다. 민석은 지난 7개월을 별도 침대에서 잤다. 그러나 어젯밤, 불현듯 그녀의 문손을 돌렸다.
이건 단순한 섹스가 아니야. 이건 복수다. 아니, 복수 따위는 커녕 우리를 잡아먹을 욕망이다.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몸을 맞대는 순간까지도 서로의 눈에서 똑같은 맛의 증오가 스멀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다시 침대로 들어왔을까.
해부: 욕망은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것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배신 후 재회의 열기는 ‘통제 상실’에서 비롯된다고. 상대가 나를 다시 떠날지 모른다는 공포가 신경전달물질을 폭발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반대다.
내가 상대를 다시 배신할지 모른다는 공포.
그 공포는 곧 가장 강렬한 흥분으로 뒤바뀐다. 네가 나를 떠났을 때 나는 무너졌지.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먼저 도망칠 차례야. 그 불안이 침대마다 불을 질렀다.
사례 1. 지영과 승환: 11년 차 부부
지영(35)은 남편 승환(37)이 회사 동료와 6개월간 바람을 피웠다는 걸 우연히 휴대폰 메시지로 알았다. 잡기는 했지만 용서는커녕 대화도 끊었다. 그러던 어느 저녁, 승환이 지영의 어깨를 붙잡았다.
나도 이제 당신 모르는 사랑을 해봤으니까
당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겠어
그날 이후 둘은 하루도 빠짐없이 섹스했다. 이웃집에서 들릴까봐 베게 깨물며 참는 지영. 하지만 3주쯤 지난 어느 날, 지영은 승환 몰래 녹음을 했다. 침대 위에서 흘리는 그의 신음소리가 너무 ‘낯설어서’.
재생 버튼을 누르자 들려온 건 승환의 속삭임이었다.
"지영아, 이게… 복수야. 니가 느끼는 만큼만 내가 더 아팠거든."
녹음기를 끄고 나자 지영은 알았다. 이 섹스는 ‘화해’가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파내는 ‘외과 수술’이라는 걸.
사례 2. 다혜와 준호: 3년 차 신혼
다혜(29)는 남편 준호(31)에게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미안하다. 너 없는 동안 한번 만났다’는 단 한 줄. 준호는 출장 중 이웃 아는 누나와 자고 왔다고 했다. 다혜는 단칼에 용서했다. 아니, 용서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운 다혜가 준호의 귀에 속삭였다.
나도 말할게. 네가 떠난 사이 나도 한 번
누군지 맞춰봐?
준호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이것도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섹스는 서로를 ‘채찍질’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다혜는 준호에게 더 과격한 자세를 요구했고, 준호는 그녀의 목덜미에 물자마자 누군지 물었다.
‘그 사람도 여기를 이렇게?’
그런 대화가 둘을 더 깊숙이, 더 잔혹하게 연결시켰다. 침실은 더 이상 휴식 공간이 아니었다. 서로를 쥐어짜는 심문실이었다.
우리는 왜 이 지옥에 끌리는가
정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깨끗한 관계’를 갈망하지만 동시에 그 불가능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러움을 직시할 때 비로소 ‘진짜’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상처받은 사람은 두 가지 선택만 남는다.
- 기억을 지워버리고 새 흰 도화지를 시작하기.
- 기억을 뒤집어쓰고 같은 도화지 위에 더 선명하게 새기기.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결국 ‘내가 너를 얼마나 아프게 할 수 있느냐’를 증명하는 방식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착각은 무서울 정도로 달콤하다. 침대 시트에 남은 냄새가 ‘증거’가 되는 순간, 너와 나는 다시는 떨어질 수 없다는 환상이.
창백한 아침이 주는 질문
여섯 시, 민석이 먼저 일어나 샤워를 했다. 문 여는 소리에 그녀도 눈을 떴다. 둘 사이엔 아무 말도 없었다. 다만 이불 위에 떨어진 머리카락 하나가 서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생각했다.
우리가 다시 섞인 게 아니라 우리의 더러움만 섞인 건 아닐까.
문고리를 잡은 민석이 돌아서서 말했다.
오늘 저녁도… 올래?
그 말에 그녀는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떠올린 건, 민석이 배신했던 그 여자의 얼굴. 단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가장 또렷한 얼굴.
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상대가 너를 배신하지 않을까 두려운가. 아니면 네가 먼저 재차 배신할까 두려운가. 둘 중 어느 감정이 더 섹스를 뜨겁게 만드는지, 아직 모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