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테이블 밑으로 건넨 단어
"아프리카? 너 진심이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발이 내 종아리를 찾아왔다. 당황한 건 나였다. 지하 맥주집 아늑한 부스, 우리 사이를 가르는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그의 눈동자에 섹스와 죄의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나는 모른 척 안주를 입에 씹으며, 저 거절이 단순한 공포는 아니겠지 하고 속으로 삼켰다.
1. 그가 진짜 두려워한 건 ‘배고픔’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도서실에서 본 사진 때문이야."
그가 고백할 때, 우리는 맥주 두 잔째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이들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구덩이에 누워 있었어. 그날 이후, 나는 ‘헝거’라는 단어만 보면 냄새가 났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 끝에 떨리던 건 연민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그 사진 앞에서도 여전히 눈을 반짝이는 것을 두려워했다.
너는 그 땅에 가서도 ‘여유’를 꿈꾸잖아. 와인 한 잔 기울이며 사자를 바라보는 여유.
그게... 잔인해 보여.
그 순간, 우리 사이에 끼어든 건 지역이 아니라 ‘당신은 얼마나 더럽게 욕망할 수 있느냐’ 라는 시선이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그 시선이, 사실 나도 모르게 기다려온 최면 같았다.
2. 쿠마시 부인의 붉은 팔찌
악라에 사는 그녀를 나는 유튜브 추천 영상에서 처음 봤다. 제목은 <결혼식 춤>이었지만, 나는 붉은 흙 위 쩍벌춤에 눈이 먼저 꽂혔다. 댓글에는 남편이 남긴 글귀가 있었다.
더러운 병균들과 춤추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그러나 다음 날, 그녀는 네일숍에서 모래색 젤을 새로 올렸다.
- 여권은 식탁 서랍 맨 밑
- 말라리아 약은 화장대 서랍 뒤
- 비치웨어는 옷장 가장 깊숙한 곳
출근 시간이 되자 남편은 문을 쾅 닫고 나갔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카운터에 서 있던 낯선 남자의 손을 맞잡았다.
나를 막았던 건 두려움이 아니라 권력이었어.
오늘, 그 권력을 뒤틀어버릴게요.
3. 나만의 지도를 그리는 순간
심리학자 브라이언 마스는 말했다.
금기를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최초의 자기 결정’ 을 한다고.
나도 그랬다.
카운터에서 티켓을 발권하는 순간, 나는 나를 위해 첫 번째 지도를 그렸다.
그 위에는 연인이 새겨놓은 ‘안 돼’라는 문장이 지워지고, ‘해도 돼’라는 새 글씨가 번쩍였다.
4. 사하라에서, 혼자
비행기가 이륙하던 순간, 나는 창밖을 봤다. 도시 불빛이 흩날릴 때마다 그의 얼굴이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네가 거부한 것은 아프리카인가,
아니면 내가 아프리카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인가.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지금, 금기의 꼭대기에 서 있다.
사막의 모래는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고, 뜨거운 바람은 속옷 끈을 흔든다. 이 땅에서 나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여자가 된다.
5. 욕망은 죄책감보다 빠르게 달린다
공항 라운지. 케냐 비자를 확인하며 나는 웃었다.
연인이여, 너는 아프리카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나는 네가 두려워한 나의 욕망을 품고 떠난다.
사막의 밤이 내리면, 나는 홀로 별을 세며 속삭일 것이다. 이제 나는 너의 거부를 넘어선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