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속옷을 못 벗었어. 뱃속에 아이가 있어서 배가 너무 커서..."
나는 스스로의 변명 같은 말을 내뱉으며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미 외투를 챙겨 들고 있었다. 문을 나서며 던진 한마디가 심장에 쇠사슬처럼 걸렸다.
"조금만 기다려. 나 오늘 늦을지도 몰라."
조금만 기다려? 기다리는 동안 나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점점 더 거대해지는 몸으로, 점점 더 초라해지는 욕망으로 버려질 뿐이었다.
그가 사라진 문이 닫히는 순간
임신 7개월 차, 흰색 임부용 속옷은 너무 단순해서 침대 위에 떨어져 있으면 하얀 기저귀 같았다. 나는 그것을 보며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아기를 낳으면 우리 방에서 가장 야한 물건은 이 하얀 속옷이 되는 건가.
왜 하핱 지금이야? 왜 내가 가장 여성스럽지 못한 순간에 그는 가장 남자답게 떠나는 걸까?
이 질문은 머릿속에서 뱀처럼 꼬여서 미끄러졌다. 그리고 그날 밤, 남편이 찾았다는 그곳의 정체가 카톡 알림 한 줄로 들이닥쳤다. 지은이라는 이름이 떴다. '오늘도 고마워 :)'
아직도 속옷을 못 벗은 나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속옷 하나 걸치고 서 있었다. 배가 너무 커서 팔을 올려 벗을 수가 없었다. 끈을 끌어당기려 하면 탯줄이 당길까 봐 겁이 났다. 그때 처음으로 '금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금기란 단순히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 임신한 아내를 욕망하는 것이 금기가 아니었다.
- 임신한 아내를 욕망할 수 없다는 사실이 금기였다.
그래서 남편은 갔다. 나를 아직 못 벗긴 채, 그는 이미 다른 누군가를 벗길 장소를 찾은 것이다.
그녀의 허리가 가는 이유
그녀의 이름은 지은. 32세, 이혼녀. 남편이 자주 언급하던 피트니스 센터 PT 트레이너였다. 그녀는 나와 정반대였다. 나는 뱃속에 생명을 품어서 몸이 불어났고, 그녀는 생명을 내려놓아서 몸이 날렵해졌다.
나는 남편의 구글 검색 기록을 뒤적였다. '임신 중 섹스 거부', '임부 부정감', '트레이너와의 금기'... 마지막 검색어가 손끝을 얼렸다. '임신 기간 중 배란 억제 실패율'
두 번째 사례, 은밀한 대기실
서울 모처의 산부인과 병원 대기실. 수지(가명, 29세)는 36주 임신부였다. 그녀는 진료 차 앉아 있던 중 남편이 떠난 이유를 의사에게 털어놓았다.
"남편이 저보다 친한 친구 언니를 만나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잖아요. 제가 가장 여성스러워야 할 순간에, 뱃속에 아기를 가진 제가 가장 여성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거."
의사는 처방전을 내밀며 말했다. "임신 중에는 호르몬이 급격히 변해서 배우자의 욕망도 변할 수 있어요."
수지는 그 처방전을 찢었다. 그녀는 남편이 그녀를 거부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단순히 몸이 변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생명의 무게가 너무 커서, 다른 모든 욕망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금단의 열매, 혹은 욕망의 해부
우리는 왜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가? 왜 임신한 아내를 두고 떠난 남편의 행적을 찾으려는가?
그것은 단순한 불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건 금기를 지키지 못한 욕망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그 욕망 속에 자신을 투영한다. 아내는 아내로서가 아니라, 탯줄로 연결된 생명으로서 금기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금기는 때로는 질투로, 때로는 자괴감으로 변한다.
"나는 아기를 품은 지 7개월째야. 그런데 남편은 이미 나를 잊은 것 같아."
이 말은 실은 우리 모두의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잃을 때마다, 나는 아직도 속옷도 못 벗었는데라는 느낌을 갖는다. 잃은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 순간에도 준비되지 않았던 자신을 마주한다.
마지막 질문, 당신의 허리는 아직 날렵한가
당신은 지금 무엇을 품고 있는가? 생명인가, 욕망인가, 아니면 잃어버린 자신인가?
그리고 당신의 문 앞에서 닫히는 그림자는 누구인가? 당신이 품은 것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떠난 누군가인가?
나는 아직도 속옷도 못 벗었는데 당신은 그걸 보고도 떠날 수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