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술 한 잔에 웃던 그녀들의 입술, 왜 우리는 거기만 계속 굴복할까

셋이 만나면 웃음보다 먼저 피어오르는 불길한 긴장감. 우리는 왜 ‘절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농담 속으로 계속 빠져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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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잔에 웃던 그녀들의 입술, 왜 우리는 거기만 계속 굴복할까

“야, 너 여자친구 생기면 나랑 키스할 수 있어?”

지하 바 테이블 위에 이 말이 떨어지자 잔이 멈췄다. 수진이 웃고 있었고, 하연이 눈을 크게 떴다. 나는 눈가에 올라앉은 장난기를 억지로 꾹 눌렀다. 잔뜩 웃는 척하며 와인을 마셨지만, 그 맛은 다 죽었다. 그 이후로 한 시간 내내, 우리 셋은 그 말을 빙글빙글 돌려 놓았다. 진짜로 해봤으면 어쩌지. 그 생각이 계속 얼굴 위로 떠올랐다.


웃음이 닿기 전의 죄책감

삼각 농담은 늘 그렇게 시작한다. 누군가가 한 줄 던지고, 누군가가 살짝 웃으며 받는다. 그건 장난인 척하는 키스다. 키스인 척하는 장난이다. 중요한 건, 그 사이 어디에도 허락이라는 단어는 없다는 점이다.

‘이건 농담이라고 해야 해. 그래, 그래야 돼. 안 그럼… 안 그럼…’

우리는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사이라서 더 무서운 단어들을 쓸 수 있다. 사랑이별도. 그래서 농담을 뱉는 순간, 세 사람 모두가 동시에 웃으면서도 손등에 힘을 준다. 이건 끝내고 싶은 장난이 아니야. 그건 고백인데 속삭이지 못하는 고백이다.


이름 석 자, 그리고 네 글자

‘도현’ ‘수진’ ‘하연’ — 세 글자, 네 글자, 세 글자. 우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누가 어느 자리에 앉는지 항상 같았다. 도현은 수진 옆, 수진은 하연 옆, 하연은 도현 옆. 세 사람이 둘씩만 이야기하면 남는 한 명은 누구인가. 우리는 그 빈자리를 웃음으로 메웠다.

지난 겨울, 강남 뒷골목 포차. 유리창에 붙은 김서림 속에서 우리 얼굴이 겹쳐 보였다. 수진이 말했다.

“야, 너네 둘이 나 빼고 바람피면 어떡할래?”

나는 하연이 눈치를 봤다. 그녀는 이마를 찌푸렸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럼 당연히 너한테 먼저 고백하지. 친구니까.”

말이 끝나자 테이블 아래 무언가 살짝 닿았다. 발끝이었는지 손끝이었는지. 우린 모두 아는 척했다.

두 달 뒤, 하연이 먼저 연락을 끊었다.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더 큰 욕망 때문인지.


웃음 뒤에 숨은 진동

인간은 금기를 깨는 순간 가장 큰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건 마치 가장 달콤한 알코올이 가장 쓴맛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던지는 농담은 그래서 미끼다. 상대가 어디까지 받아칠 수 있는지, 얼마나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나침반.

‘네가 웃으면 나도 웃겠지.’
‘네가 안 웃으면 나는 얼마든지 뒤로 물러날 수 있어.’

그래서 삼각 농담은 언제나 안전해 보인다. 하지만 안전함은 환상이다. 세 사람이 모여 있던 이유는, 오히려 둘만의 관계로는 감당하지 못할 욕망을 나눠 품기 위해서였다. 우린 서로에게 퍼즐 조각을 주고받으며, 결국 자기 모습보다 더 큰 그림을 보려 했다. 그 결과는 늘 파국이었다.


셋 중 누가 먼저 손을 뗄까

결국 그날 밤, 마지막으로 우린 다 같이 모였다. 수진이 먼저 일어났다.

“나, 얘랑 사귀기로 했어.”

그녀가 말한 얘는 나였다. 하연은 잔에 남은 맥주를 한 입 마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축하해.”

그 말 속에서 하연이 흘린 눈물은 없었다. 대신, 유리잔에 낀 거품이 눈물인 척했다. 우리가 그토록 웃었던 자리, 그건 사실 눈물 한 방울도 남기지 못한 무대였다.

나중에 들었다. 하연은 우리 둘이 연락한 지 한 달 만에 해외로 떠났다고. 그녀는 결국 우리가 아닌, 그 농담을 피해간 것이다.


당신도 누군가의 ‘세 번째’였던 적 있나

우린 왜 그 농담을 계속 던졌을까. 아니, 왜 그 농담에 계속 화답했을까. 그건 단지 장난이 아니었다. 그건 우리가 가진 욕망의 크기를 서로에게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절대 안 될 줄 알면서도 우린 그 말을 놓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말이 사라지면 우리도 함께 사라질 테니까.

‘그래, 웃고 있을 때가 가장 무서운 거야.’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떠올리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사람이 웃으며 던진 마지막 농담은, 당신이 꿈꾸던 거의 키스였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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