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열쇠를 꽂고 돌리기 전에, 문 앞에 귀를 댔다. 아무도 없는 오후 3시, 엄마가 장 보러 간 28분. 민서는 손가락으로 열쇠를 두 번, 세 번 더 쓸었다. 딸깍. 문이 벌어지는 소리와 함께 먼지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그곳은 아빠가 “책 읽는 곳”이라 불렀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발을 들인 적 없었다. 절대 가지 마. 무슨 일 있어도. 얼마나 강한 목소리였는지, 그날 밤 민서는 꿈 속에서도 문손잡이를 돌리지 못했다.
먼지 속에 숨은 숨결
책장 사이로 흩어진 향수 냄새.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낯선 꽃 향. 어린 시절 민서는 그 향기를 맡을 때마다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의 숨소리가 들린다고 믿었다. 아빠가 집에 혼자 있던 날, 가끔 흘러나오던 여성의 웃음소리처럼.
책상 맨 위 서랍. 그녀는 손끝으로 천천히 당겼다. 안에는 한 장의 사진. 아빠가 아닌 남자와 엄마가 끌어안고 있는 사진. 아니, 엄마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여자는 지금의 엄마처럼 차분하지 않았다. 눈이 약간 치켜뜨여 있고, 입꼬리가 말랑말랑하게 올라갔다. 민서는 처음으로 엄마는 언제나 엄마였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머리에 꽂았다.
다시, 손끝에 걸린 색욕
서른 살 지후는 회사 앞에서 그녀를 마주쳤다. 흰 셔츠 단추가 하나 빠진 그녀는, 민서가 열어본 사진 속 여자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바로 이 느낌이다. 민서는 그날부터 지후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다가, 다시 힐끗거리며 미소 지었다. 엄마가 가르쳐 준 ‘바람직한 행동’과 정반대였지만, 미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내에서 제일 조용한 사무실. 지후가 먼저 다가왔다. 너 자꾸 나 보는 거, 왜 그래? ...보고 싶어서. 그럼 봐.
지후는 민서의 머리 끝을 살짝 쓸었다. 손끝이 귀를 스치는데, 온몸이 뜨거워졌다. 그때 민서는 깨달았다. 엄마가 절대라 막았던 것은, 이런 떨림을 금한 것이었구나.
너도 그곳을 기억하니
대학원 동기 효진은 매주 수요일 도서관 지하 2층 열람실을 지켰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노트북 화면. 남자가 타자 치는 손가락, 잠시 멈춘 턱, 그리고 흘낏 쳐다보는 눈길. 효진은 그 작은 눈웃음에 6개월 째 매주 수요일을 비웠다. 어느 날 남자가 책상 위에 쪽지를 남겼다. ‘당신이 여기 있어서 좋습니다’. 효진은 그걸 보며 처음으로 아무 말도 없이 오래 울었다. 그 눈물은 의외로 짜지 않았다.
금기를 밟는 순간의 마법
인간의 뇌는 금지된 것에 더 민감하다. 전두엽이 ‘안 돼’를 외치면, 변연계는 ‘해보자’를 더 크게 외친다. 그 차이가 바로 설렘이다. 내가 해선 안 될 일을,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비밀의 동맹이 된다. 금기는 욕망의 장막을 쳐 준다. 그 장막 너머로 손이 스며들 때, 우리는 처음으로 자신을 온전히 내보인다. 네가 만일 그 순간을 눈을 감고 견딘다면, 다음 번엔 눈을 뜨고 싶을 것이다.
너는 아직도 그 문을 열고 싶은가
지금 당장, 당신 앞에 닫힌 한 문이 떠오른다. 잠긴 방, 차단된 연락처, 혹은 부모님이 절대 모르게 한 키스. 그 문손잡이를 돌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순간 당신은 누구를 보게 될까. 그리고 그 사람은 당신에게 무슨 이름을 불러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