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품은 36.5도. 딸 지수가 어릴 적 목덜미를 간지럽혔던 그 팔은, 언제나 같은 체온이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 때마다 느껴지던 냄새—피어싱이 아닌 세탁 세제와 파스의 온화한 냄새. 지수는 그 온도를 믿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믿었다.
그런데 3월 18일, 오후 8시 21분, 지수는 재현의 손등에 새겨진 숫자를 보았다. 1998.03.18. 숫자는 푸른 잉크로 파스텔처럼 흐려 있었지만, 그 아래 42도의 불길이 숨어 있었다.
“그날 뭐야?”
“내가 처음 붙잡힌 날이지.”
재현은 말했다. 아빠는 여전히 그를 ‘장도연 아들’이라 믿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빠가 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밥 먹자”라고 했을 때, 재현은 모자를 눌러쓴 채 미소 지었다. 어린 시절 친구—그렇게 소개됐던—의 미소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날 밤, 지하주차장 뒤편 벽돌 골목. 재현은 지수를 벽에 세웠다. 가로등이 켜지지 않은 어둠 속에서, 그의 손은 지수의 겨드랑이 아래 흰 셔츠를 살짝 접었다.
“너 아빠는 나 뭐라고 생각해?”
“…친구?”
“그럼 너는?”
재현이 속삭였다. 한 문장. 그러나 살인자의 뜨거운 손길처럼 지수의 가슴에 착 달라붙었다.
“나는 네가 내 목에 숨을 거둘 때 소리를 듣고 싶어.”
지수는 재현의 왼손을 자신의 목 옆으로 가져갔다. 손바닥은 뜨거웠다. 지수는 눈을 감았다. 아빠는 모른다. 그래서 더 뜨거워진다.
11월 9일, 하연이 & 승준
하연이는 23살, 아빠는 대기업 부장. 아침 7시 15분, 아빠가 출근하며 “오늘도 열심히”라며 손바닥으로 하연이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 손은 36.5도였다. 하연이는 그 손을 믿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37도보다 한도 낮은, 사랑의 온도.
그날 오후, 빌라 단지 놀이터. 하연이는 승준의 타투 아래 흉터를 발견했다. “누가 때렸어?”라고 물었을 때, 승준은 “내가 잘못해서”라고 웃었다. 하연이는 그 팔을 만졌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피부가 손끝을 찔렀다.
“네 아빠는 나 뭐라고 해?”
“청소 알바생?”
“그럼 너는?”
승준이 속삭였다. 한 문장. 낙인처럼.
“나는 네가 내 목을 감싸는 걸 좋아해.”
하연이는 승준의 손을 허리에 댔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아빠의 손은 너무 부드러웠다. 승준의 손은 너무 거칠어서, 하연이가 스스로를 만질 수 있었다.
금기의 온도
우리는 평생 올바른 온도를 추구한다. 부모의 품 36.5도, 사회가 요구하는 37도. 그러나 금기는 42도의 불길이 되어 우리를 태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화상이 내 것이라는 것에 홀린다.
범죄자의 팔은 단순한 위험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상처다. 부모는 그 상처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그 상처는 오직 나만의 것이 된다.
아프지만 내 것이다.
죽일 수도 있지만, 나를 살린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아빠의 팔에서 벗어나 그의 품을 찾고 있다. 누군가는 아빠의 품이 너무 따뜻해서 차갑고, 그의 팔이 너무 차가워서 불이 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빠가 모르는 상처를 품에 안고 있다.
아빠는 모를 것이다. 하지만 너는 안다. 언젠가 그 상처를 핥으며 스스로를 확인할 것이다.
42도의 불길은, 아빠의 품과 가장 먼 곳에서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