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울릴 때 새벽 두 시, 민서의 집 현관 앞
화면엔 ‘지은’이라는 두 글자만 떠 있었다.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등을 기댄 채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또 끝내자고 했잖아. 너도 그랬고 나도 그랬고.”
“그래서… 오늘 진짜 마지막으로 몸만 한 번 더 확인하자.”
숨소리가 귓가에 닿는 순간,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끝내지 못할 이별의 두 번째 밤이라는 걸.
‘끝났다’는 말은 욕망의 문을 열쇠로 돌렸다
지난주 토요일, 한갯가 편의점 앞. 우리는 입에선 ‘이제 그만’을 뱉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내 손등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우리 그만하자.”
“그래, 그만하자.”
말과 말 사이, 숨이 닿았다.
그때부터였다. ‘끝났다’는 선언은 냉정했지만, 동시에 우리를 희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남들은 이별 후 첫날 밤을 술로 보낸다지만, 우리는 서로의 침대로 발걸음을 했다.
지하철 2호선 종로3가역, 플랫폼 가장 끝
밤 열한 시 반, 마지막 열차가 들어오기 직전.
지은은 플랫폼 끝, 황색 안내등 아래에서 서 있었다. 검은색 코트 아래로 드러난 종아리가 차가운 바람에 붉게 물들었다.
“오늘은 진짜 끝이야.”
“알아. 그래서 오늘은 안 하려고 했어.”
대답과 동시에 내 손은 그녀의 손등을 스쳤다. 한 번, 두 번. 마치 리듬을 맞추듯 손가락이 엉켰다.
전동차가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순간, 지은은 고개를 저었다.
“올라타지 마.”
그 말 한마디에 승강장은 숨을 죽였다. 열차는 떠났고, 우리는 그 자리에 남았다. 두 사람만의 유예, 끝없는 연장.
잠실 롯데타임 뒷골목, CU 편의점 앞 새벽 두 시
오늘은 73일째.
편의점 불빛 아래, 지은은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서 있었다. 검은 마스크 위로 눈동자만이 반짝였다.
“너 왜 여기 있어?”
“니가 올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녀는 대답 대신 캔커피를 내밀었다. 뜨거운 캔이 냉기 가득한 손에 닿자, 살이 비명을 질렀다.
“우리, 오늘은 그냥 가자.”
“그래, 그냥 가자.”
말은 그랬지만, 발걸음은 편의점 뒷골목으로 향했다. 어둠이 깊을수록 금기는 달콤해진다.
침대 위, 그녀의 몸은 이미 ‘전 남자친구’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방문을 닫는 순간, 지은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코트 단추를 풀며 나지막이 말했다.
“오늘은 끝이라고 생각하고 해.”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뒷목에 입을 맞췄다. 차가운 피부 위로 뜨거운 숨이 닿자, 지은은 몸을 떨었다.
이미 끝났다는 사실이, 상대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절망이, 오히려 ‘이것도 마지막’이라는 핑계로 욕망을 부추겼다.
침대 시트가 구겨질수록 우리는 더 깊이 서로를 파고들었다.
“여기, 다시는 안 올 거야.”
“알아.”
“그래도 오면 어떡하지?”
“그럼 또 끝내자고 해.”
서로의 몸에 남은 흔적, 그리고 아침
새벽 네 시 반, 지은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소리가 들린다. 샤워하는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이별은 머리로 하는 것이지, 몸으로는 아직 못 했다.
화장실 문이 열렸다. 수건으로 머리를 닦는 지은이 나왔다.
“나 간다.”
“응.”
문이 닫히는 소리. 방은 다시 적막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녀의 문 앞에 서 있다
밤이 다시 찾아올 때, 나는 아직 대답하지 못했다.
‘진짜 끝내고 싶은 건가, 아니면 끝내지 못하는 걸 즐기는 건가.’
그 질문은 아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오늘도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엔 ‘지은’이라는 두 글자가 또 떠 있다.
새벽 두 시, 그녀의 집 현관 앞.
나는 아직 끝내지 못하는 우리 사이의 숨소리를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