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첫 장난감은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다

중2 교실 뒷문부터 엘리베이터 3초의 금기까지, 혼자 피웠던 쾌감이 남긴 위선과 집착. 지은과 나눈 거칠음의 통화, 그리고 아직도 식지 않는 열기.

17금성장비밀손맛지은

“쟤 손이 왜 저래?”

중2 교실 뒷문. 점심 종이 울리자마자 모두가 도시락 냄새를 쫓아 뛰쳐나갔다. 나만 책상에 붙박힌 인형처럼 남았다. 왼손은 교과서 사이에 끼워 둔 리모콘처럼 딱딱하게 굳었고, 오른손은 가늘게 떨리다 말았다. 허리띠 안으로 스며드는 건 공포보다 훨씬 빠른 전류였다.

이거 하면 나쁜 애 돼. 근데 멈출 수가 없어.

세 치도 안 되는 시간이 한 숨처럼 지나갔다. 등굣길에 지붕 모양으로 그림자를 드리운 행운의 12층 아파트. 8층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귀에 박혔다. 문이 닫히며 누군가 속삭였다.
또 왔구나.


숨겨진 전선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 건 그 장난감 때문이 아니었다. 엄마가 사준 ‘수학의 정석’ 사이에 꽂힌 샤프심이 먼저 불씨를 키웠다. 뾰족한 끝이 부드러운 종이를 찌르는 순간, 심장이 머리 끝까지 쏟아졌다.

그날 이후 나는 필통을 수색하는 형사가 됐다. 마커, 열쇠, 둥근 샤프심통, 스케이트보드 트럭 볼트까지. 하나같이 거칠었다. 부드러움 따위는 원치 않았다. 학교에서도 똑같았다. 체육복 주머니 속 빨간 테이프 동아리 띠—목에 두르면 조여오는 허깨비 환각이 뒷목을 간질였다. 친구들은 그걸 그저 ‘리본’이라 부르는데, 나만 진짜 가죽처럼 보였다.


혼자 남겨진 채로

고1 여름방학, 지은의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학원 앞 편의점에서 알게 된, 한 살 위 언니. 지은은 우유 한 팩을 뚜껑째 문 채로 말했다.

“밤새 시험 문제 넘기다 손목이 저려왔어. 그런데 이상하더라, 아프면서도 뭔가 달라진 느낌.”

그녀는 손등에 얇게 선 듯한 흉터를 슬쩍 내보였다. 가위 날로 팔뚝 안쪽을 스친 뒤, 거기에 닿는 옷감의 감촉을 즐겼다고 했다. 붉은 선 하나로 세상이 달라졌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8층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재활용 스티로폼 상자를 떠올렸다. 털이 달린 듯한 바스러진 면이 문질렸을 때, 생각보다 훨씬 거칠었다. 엘리베이터가 5층에 멈추기 직전, 문이 열리기 전에 끝났다. 아무도 몰랐지만, 나는 스티로폼 가루를 바지 주머니에 담아 왔다. 한동안 그걸 만지작거렸다.

우리는 서로의 비밀을 겹쳤다. 지은이 물었다.

“네 가장 거칠었던 순간은?”

나는 대답했다. 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 남겨지는 3초. 그 짧은 순간, 세상이 온통 내 것이 되었다.


금기의 맛이 왜 달콤한가

심리학자 맥클레런드는 ‘욕구의 삼각형’을 말한다. 성취, 권력, 친밀. 그러나 우리 몸은 네 번째를 숨겨놨다—바로 금기. 금단의 열매는 달콤할 수밖에 없다.

학교 상담실 벽에 붙은 성교육 포스터는 늘 ‘함께’였다. 두 손이 맞잡힌 채로 웃는 남녀. 나는 그림 밖에 서 있었다. 혼자 웃고, 혼자 숨 죽이고, 혼자 끝냈다. 그래서일까. 내 성적 상상은 늘 ‘혼자 남겨지는 것’으로 끝났다.

지은과 나는 서로를 거울 삼았다. 그녀가 내게 권력을, 나는 그녀에게 질투를 선물했다. 서로의 거칠음을 빌려오면서도, 결코 함께 끝내지 못했다. 지은이 손등의 흉터를 내밀 때마다 나는 내 주머니 속 스티로폼 가루를 꼭 쥐었다. 그건 우리만의 독점 통화였다.


그 거칠음이 아직도

스물다섯,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손가락의 온도를 떠올린다. 교통카드를 꾹 누르는 플라스틱의 딱딱함, 빗자루 손잡이의 나무결이 아직도 반응을 유발한다. 연인의 손길보다 더 빠르게. 부드러운 것이 두려운 건 아니다. 다만 잊혀질까 봐.

그 거칠음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것처럼.

지은은 어느 날 연락이 끊겼다. 대학 입시 붕괴였을까, 아니면 피해의식이었을까. 그녀도 나처럼 스티로폼 가루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거칠음을 허락했을까.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직도 혼자다.


당신은 여전히 혼자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거칠음을 허용할 준비가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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