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 빠지는 37초
"당신은 눈을 맞추면서도 항상 한쪽 귀를 다른 곳에 두는 사람이네요."
나는 막 맥주를 한 모금 마시려다 멈췄다. 인사 한 번 나누지 않은 여자가 오른쪽 팔을 바에 살짝 기댄 채 내게서 40cm, 아마도 그 정도였다. 더 이상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은 거리. 그녀는 내 눈동자를 꿰뚫듯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내가 방금 눈길 줬던 긴 머리의 그녀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근데 그건 나쁜 습관은 아니에요.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끌린다는 증거거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한 걸음 더 들어왔다. 향수 냄새가 아니라, 머리카락에서 풍겨 나온 샴푸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피부색깔, 목덜미에 살짝 말린 머리카락 한 올, 맥주 잔을 든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까지 모두 기억해 버렸다.
왜 우리는 구멍을 파고 싶어질까
"그녀는 내가 숨기고 있던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속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첫 만남에서 깊이 빠지는 여자들은 단순히 예쁜 게 아니다. 그녀들은 표면을 넘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눈길을 피하는 0.3초,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1초, 손가락 관절을 꺾는 습관까지. 그녀들은 당신이 남들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미세한 결점을 훔쳐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걸 대놓고 말한다. "당신은 왜 항상 거짓말할 때 먼저 웃으려 하죠?"
이건 단순한 호감이 아니다. 침투 욕망이다. 당신은 그녀가 당신의 내면을 이미 알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당신도 그녀의 속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마치 조 개를 까서 안에 숨겨진 진주를 확인하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는 강박처럼.
그녀의 눈이 나를 파헤쳤던 밤
사내 준호는 그날 퇴근 후에도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11시 반, 회사 뒷문으로 나오려다가 그녀를 마주쳤다. 흰 셔츠에 블랙 원피스를 걸친 여자. 그녀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연기를 내 쪽으로 내뿜으며 말했다.
"당신은 매일 밤 11시 32분쯤 이 문을 나오죠. 하지만 오늘은 4분 늦었어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쳐서 그랬나?"
준호는 놀랐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여기서 담배를 피우며 자신을 지켜봤던 것이다. 하지만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가와서 준호의 넥타이를 고쳐주며 말했다.
"이 넥타이는 3일째 같은 건데, 오늘은 왜 반대로 매셨어요? 아침에 아내가 안 보셨나?"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준호의 왼손을 잡고, 결혼반지 자국이 아닌 반지 아래로 약간 파인 주름을 쓸었다.
"이게 5년 된 반지 자국이에요. 그런데 최근 3개월은 안 끼고 지낸 거죠? 하지만 아직도 벗기 싫은 마음이 남아있나 봐요."
그녀는 준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준호는 그녀의 손에 끌려, 그날 밤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의 방은 정리되어 있었지만, 서랍 하나를 제외하고. 그 서랍은 잠겨 있었고, 그녀는 준호에게 절대 그 서랍을 열지 말라고 했다. 물론 준호는 그날 밤 서랍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서랍 안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그녀에게 빠져버렸다.
다른 사례, 지하철 2호선에서 만난 그녀
현정은 지하철에서 만난 남자에게 한 번에 빠졌다. 그는 문 앞에 서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현정이 다가가자 책을 내려놓지 않았다. 현정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그가 책을 읽는 동안, 현정은 그의 왼쪽 가방 안에 든 것들을 하나하나 추측하기 시작했다.
"노트북 파우치, 검은색 지갑, 그리고 오늘 아침에 들어간 듯한 샌드위치 냄새. 아, 그리고 가방 뒷주머니에는 분명 어떤 여자가 준 편지겠죠."
남자는 놀라서 책을 내려놓았다. 현정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맞췄나요? 틀렸다면 정정해 주세요."
남자는 가방을 열어 보여줬다. 노트북 파우치, 검은색 지갑, 그리고 샌드위치. 하지만 뒷주머니에는 편지 대신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있었다. 현정은 그 사진을 보고, 그가 왜 오늘 아침 샌드위치를 먹었는지 알게 되었다. 사진 속 여자는 그가 사랑했던 사람이었고, 그녀는 샌드위치를 잘 만들었다. 현정은 그날 밤, 그 남자의 아파트로 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진 액자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그녀가 만든 샌드위치를 먹고 있네요. 그러면서도 다른 여자의 집으로 오다니, 참 이상한 사람이에요."
그날 밤, 현정은 그의 속옷 서랍을 열어봤다. 그리고 그녀는 거기서 그가 아직도 전 여자의 팬티를 간직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현정은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팬티를 꺼내서는, 그가 왜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날 밤, 현정은 그 남자의 가슴에 귀를 대고,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그녀는 그의 심장이 누구를 위해 뛰는지 알고 싶어 미쳐버렸다.
왜 우리는 남의 구멍을 파고 싶어하는가
"당신은 누군가의 표면을 뚫고 싶은 욕망이, 실은 당신 자신의 내면을 뚫고 싶은 욕망의 반사라는 걸 알고 있나요?"
우리는 첫 만남에서 깊이 빠지는 여자들에게 끌리는 이유가 있다. 그녀들은 우리가 숨기고 있던 부분을 대신 말해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들의 속을 파헤치면서, 우리가 숨기고 있던 자신의 어둠을 마주하게 된다. 지하철에서 만난 남자의 사진 속 여자는, 실은 현정이 잃어버린 어머니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현정은 그 사진을 보며 울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남자는 현정이 왜 그 사진을 보고 울었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남의 구멍을 파헤치면서, 결국 자신의 구멍을 메우려 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짜로 파헤치고 싶은 건 자신의 내면이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우리의 내면을 알고 있는 척하지만, 실은 우리가 그녀들에게서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첫 만남에서 그렇게 빠르게 빠진다. 그녀들은 우리의 욕망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
당신은 첫 만남에서 깊이 빠진 적이 있나요? 그녀가 당신의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착각이었을까요, 아니면 당신이 그녀에게서 자신의 어둠을 투영하고 있었을까요?
"그녀가 당신의 구멍을 파고들 때, 당신은 정말로 그녀의 속을 보고 싶었나요, 아니면 그저 당신의 내면을 투영하고 싶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