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은 아침 7시 20분, 여자 침대 맡에 앉아 한참을 숨써왔다. 15년 전 첫사랑의 머리카락 사이로 숨을 내쉬는 순간, 그가 찾은 건 달달했던 레몬 비누 향기가 아니라 무언가 켜켜이 쌓인, 누렇게 변한 냄새였다. 아래층 공사장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냄새와 뒤섞인, 피부에서 우러나는 지침 냄새.
"너도 이제... 나만큼 늙었구나."
그 말이 튀어나온 건 참았던 한숨이었다. 여자는 겨드랑이를 가리며 몸을 돌렸다.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건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말라비틀어진 시간이었다.
뜨거웠던 그때의 시체
우리는 첫사랑의 죽음을 제대로 매장하지 못했다. 대신 15년 동안 지하실에 숨겨놓은 시신을 매일 꺼내어 키스했다. 그 시신은 우리가 기억하는 날씨, 그날 입었던 옷, 처음 만났던 카페의 음악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육신은 계속해서 썩어갔다.
그녀의 목덜미에 뿌린 향수는 달라져 있었다. 예전엔 살짝 달콤한 시나몬 향이었는데, 이젠 숯이 탄 듯한 끈적한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피부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선 피로가 스며 나온다. 그게 무엇보다도 우리를 격노하게 만들었다.
'네가 왜 이렇게 변했어? 내가 그렇게 불쌍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사실은 자신이 변했다는 걸 알면서도, 죄를 전가하고 싶었던 거다.
몸이 기억하는 거짓말
박소영은 38세, 잠실에 사는 대리. 그녀는 남편이 출장 간 날, 20대 시절 연인의 톱니를 찾아갔다. 17년 전 헤어졌던 남자. 그가 보낸 단순한 '오랜만에' 라는 톱니에 말려들었다.
잠실 롯데 호텔 1205호. 문을 열자마자 박소영은 알았다. 이 남자는 더 이상 그녀가 기억하는 체구가 아니었다. 풋풋했던 눈빛은 흐릿해졌고, 손등의 혈관은 튀어나와 있었다. 그래도 일단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냄새를 맡아야 했다.
그때 그는 체육관 냄새, 샤워 후 비누 냄새, 그리고 담배 연기를 싫어했었다. 지금 그의 목덜미에 코를 대니, 담배와 맥주, 그리고 어른 남자의 피로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그 냄새가 박소영의 심장을 콱 움켜쥐었다.
아직도 나는 그 냄새를 원한다
그러나 그건 사랑이 아니라
내 청춘의 향수병일 뿐
그녀는 화장실에 가서 숨을 쉬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22살이 아닌 38살의 자신이 서 있었다.
시들어가는 욕망의 정원
심리학자 맥킨리가 말하길, 인간은 자신의 첫 번째 욕망을 완전히 죽이지 못한다. 대신 그 욕망을 무덤에 묻어두고, 가끔씩 파헤쳐 본다. 그렇게 15년. 그 시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더 썩어 있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냄새에 민감할까. 후각은 감정 기억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감각이다. 첫사랑의 냄새를 맡는 순간, 우리는 그때의 모든 감정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그 감정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 우리는 단지 시체의 향수병에 걸려 있다.
여기서 가장殘酷한 건, 우리가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사랑하는 건, 그 시절의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첫사랑의 몸이 시들어갈수록 더욱 광적으로 안고 싶어진다. 마치 자신의 청춘을 되살리려는 듯이.
향기 대신 돌아온 한기
이제 우리는 서로의 냄새를 맡지 않는다. 대신 새벽 3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만 열심히 들여다본다. 그 사진 속에 숨겨진 15년 전의 얼굴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건 이미 없다. 우리가 안고 있는 건 단지 기억의 유령일 뿐.
당신은 정말 지금 그 사람의 냄새를 원하는가, 아니면 그 냄새 속에 갇혀 있던 당신 자신을 원하는가?
청춘의 시신과 지금의 살아 있는 몸 사이,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