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5살 위 첫사랑, 첫 경험은 왜 더 깊게 파고들었나

어린 시절 다섯 살 위 선배에게 첫 키스를 건넨 순간, 그는 내 몸 안의 아직 모양 잡히지 않은 공허를 알아챘다. 그리고 그 공허는 아직도 비어 있다.

첫사랑연상금기집착초기관계

그날은 한여름이었다. 방과 후 학교 뒤편 논두렁, 잿빛 물웅덩이가 구멍처럼 패어 있었다. 열여섯 민서는 아홉 학년 위 선배 도현의 손에 이끌려 그 구덩이 앞에 섰다. 햇살이 뒤틀린 풀잎 위로 떨어지고, 도현은 풀잎보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이거 옛날엔 호수였대. 사람들이 밤마다 와서 뭐 했을까?

민서는 대답 대신 무릎을 꿇었다. 낯선 땅, 낯선 향. 그는 민서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손끝이 머리카락을 넘겨 귀를 스칠 때, 민서는 처음으로 귀가 찌릿했다.


논두렁에서 온 첫 침

도현은 말없이 민서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풀잎이 으스러지는 소리, 흙냄새, 먼지. 그가 민서의 머리를 아래로 누르며 속삭였다.

'너도 알고 싶지 않아? 사람들이 여기서 뭘 했는지.'

민서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닫히는 순간, 도현의 숨결이 입술에 닿았다. 씹던 껌 냄새, 담배 찌꺼기, 그리고 뭔가 젖은 것. 민서는 혀가 닿자마자 몸을 떨었다. 그 떨림이 지금도 생생하다.

민서는 그날 이후 도현을 그리움의 두통으로 기억한다. 문득 머리가 지끈거릴 때마다, 혀끝에선 여전히 그날의 흙맛이 난다.


다섯 살 위의 약속

도현은 흔들리는 복도 끝에서 민서를 다시 불렀다. 그때 민서는 열일곱, 도현은 스물둘이었다. 숫자가 겨우 다섯 자루 차이지만, 그 다섯은 1에서 9까지의 모든 수를 대변했다.

나중에 스물이 되면 그때… 하고 민서가 머뭇거렸다.

도현은 민서의 손바닥에 작은 종이 조각을 쥐어주었다. 쪽지에는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그날밤 민서는 냉장고 속 우유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그 우유는 처음으로 쓴맛이 났다.


그가 사라진 밤

약속 날, 민서는 서울역 2번 출구 앞에서 도현을 기다렸다. 밤 11시 58분. 시계 초침이 12를 가리키는 순간, 도현은 나타나지 않았다. 민서는 지하철 막차를 놓쳤다. 돌아오는 길, 민서는 휴대폰을 꺼내 도현의 번호를 눌렀다. 수신 거절.

집에 돌아온 민서는 욕조물을 받았다. 수온은 도현의 손끝보다 뜨거웠다. 민서는 머리를 물에 담갔다. 귀를 채운 물결 소리, 그 위로 도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아직 어려. 나중에 후회할 거야.'

민서는 물속에서 눈을 떴다. 거울 속 민서의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민서는 거울에 손바닥을 대고 속삭였다.

난 이미 후회하고 있어.


왜 우리는 큰 숫자에 눈이 멀었을까

심리학자 윤석준은 "연상에 대한 욕망은 실은 성장 욕망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다섯 살 위는 단순 숫자가 아니라 '아직 나에게 없는 무언가'를 상징한다. 그 무언가는 경험, 물리적 키, 그리고 죄책감을 모르는 눈빛이다.

민서의 경우, 그 욕망은 더 미묘했다. 부모님 이혼 후 뿌리를 내리지 못한 민서에게 도현은 '떠나도 괜찮은 첫걸음'이었다. 다섯 살 위는 곧 '내가 먼저 떠나도 괜찮다'는 허가장이었다. 그래서 민서는 도현에게 처음으로 집착했다.


두 번째 민서

세월이 흘러 민서는 스물일곱이 되었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 DM이 왔다. 보낸 사람은 '도현'. 프로필 사진은 흐릿한 실루엣. 민서는 손가락이 떨렸다.

DM 내용은 짧았다. 미안했어. 그때 난 군대를 가야 했어.

민서는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다 답장을 보냈다. 괜찮아. 나도 군대 갈 나이였으니까. 사실 민서는 여자였다. 그러나 그 순간 민서는 스스로를 다섯 살 아래로 축소했다. 다시 한 번 아프게 되기 위해서였다.


아직도 비어 있는 구멍

서울역 2번 출구는 지금도 그대로다. 민서는 가끔 밤 11시 50분쯤 그곳에 선다. 지하철은 이미 끊겼고, 사람들은 흩어진다. 민서는 손바닥에 작은 쪽지를 꺼낸다. 그날 도현이 준 그 종이를 복사해서 만든 것. 민서는 그 쪽지를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도현은 지금 어디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민서는 그 질문에 답이 없다는 걸 안다. 왜냐하면 민서가 기다리는 건 도현이 아니라 그때 도현이 뚫어준 다섯 살 위의 구멍이기 때문이다. 그 구멍은 아직도 비어 있다. 그리고 비어 있을 것이다.

너는 지금도 누군가의 ‘다섯 살 위’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그 기다림 뒤에 숨겨진 공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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