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욕실에서 나올 때마다 수건 위로 보이는 반신 torso가 낯설었다. 25년 동안 매일 봤던 몸이지만, 최근엔 흘러내린 물방울 하나하나에 초점이 맞춰졌다.
"너, 왜 그래?" 아내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래, 나는 너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고 싶어.
목욕탕 거울에 비친 낯선 그림자
50이 되자 이상한 게 생겼다. 아내의 목덜미 뒤쪽, 그 한 줌의 피부 주름살이 연필로 그은 듯 선명해지는 거다. 손끝이 가려고 했다. 아니, 그냥 보는 게 아니라 눈으로 쓸어내리고 싶었다.
이게 다 뭘까. 초반엔 유행 끝에 사준 레드 와인 때문인가 했다. 하지만 와인은 술잔만 비워졌고, 갈증은 더 깊어졌다.
그녀가 한 달 전 생일에 받은 쪽꽃향 디퓨저 때문인가? 그 향이 머리카락에 묻으면서, 나는 문득 ‘그 향기가 가슴골까지 스며들었을까’라는 상상에 사로잡혔다. 옆에서 TV 보는 아내에게, 그 누구도 모를 속삭임을 보내고 있었다.
훈남 PT 트레이너와의 촉촉한 대화
지난주, 아내는 동네 헬스장에 등록했다. 20년 만에 처음이다.
“오늘은 역도 높이기 했는데, 허리가 쫙 펴지더라고. 트레이너가 손잡아주면서 ‘숨을 깊게 쉬어보세요’ 그러더니, 가슴이 확 올라가는 거 있지.”
그 말에 불현듯 상상이 펼쳐졌다. 키 185cm, 외국 드라마 나올 법한 얼굴의 트레이너가 아내의 어깨를 잡고,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리는 장면. 그 손이 아내의 갈비뼈를 세로로 쓸 때, 아래침 끝이 살짝 걸릴 만큼 아슬아슬하게.
"어떻게 믿을 수 있어?" 속으로 되뇌었다. "아니, 내가 왜 이런 걸 믿고 싶지?"
심리학자도 못 피한 어두운 실험
결혼 생활 25년 차, 심리학자들은 ‘친밀함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시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그녀의 내면 지도를 새로 그리고 싶다.
심리학 용어로는 ‘친밀감의 재탐색’이라고 하나? 하지만 난 단순히 ‘재탐색’이 아니라 ‘재정복’이라는 단어가 더 땡겼다. 50대가 되자 갑자기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영역을 다시 드러내놓고 싶어진 거다.
실제 같은 이야기 두 편
(1) 미선 씨의 속삭임
미선(49)은 결혼 26년 차다. 남편이 최근 침대에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척추 마디 하나하나를 세어준다.
“처음엔 이상하더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싶었는데…” 그녀는 속삭였다. “근데 막상 해보니… 누가 나를 다시 처음부터 탐색하는 기분이야. 내 몸의 골짜기와 봉우리를. 그게… 너무 떨려.”
남편은 대답 없이 다음 마디를 찾았다. 그래, 네 안에 숨겨진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해.
(2) 정국 부부의 잠긴 문 뒤
정국(52)은 아내가 잠든 뒤, 그녀의 일기장을 몰래 펼쳐본다. 물론 들키면 끝장이다. 하지만 그 위험이 오히려 더 달콤했다.
[일기장] “오늘 남편이 내 귀에 숨을 불어넣으며, ‘안쪽까지 맛보고 싶어’라고 했다. 25년 만에 처음 듣는 말. 내가 낯선 여자가 된 기분.”
정국은 그 문장을 읽고, 그래, 나는 네가 낯선 여자가 되길 바랐어.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50대가 되면 세상이 뒤집힌다.
- 친구는 이혼한다.
- 아이들은 대학 끝나고 떠난다.
- 회사는 퇴직을 재촉한다.
그래서 더 깊숙이 파고들고 싶어진다. 아내의 가장 깊은 곳, 아직 내가 지도에 표기하지 못한 그곳이 있다는 사실이 삶의 마지막 모험처럼 느껴진다.
사실은 두려움 때문이다. 내가 먼저 죽을지, 그녀가 먼저 떠날지.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그녀 안의 미지의 1%라도 더 채우고 싶다.
문이 닫히고 남은 향기
밤마다, 아내가 잠든 뒤 나는 그녀의 손등 위에 내 입술을 대고 미세하게 떨린다.
가장 깊은 곳은 어디일까.
그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25년 전 첫날밤에 아내가 한 말이다.
“나도 아직 내 안을 몰라. 함께 찾아줘.”
그때는 대답했다. “평생 찾아줄게.”
지금 나는 그 약속을 다시, 또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지키고 있는 중이다.
그대여, 당신의 가장 깊은 곳… 지금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