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백일하던 아기는 애기가 아닌 증손자였다.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우는 아이의 미간이, 그의 미간을 빼닮았다고 할머니가 웃었다.
단 한 번의 오열이 터뜨린 진실
강남구청 민원실. 2023년 11월 7일 오후 3시 14분.
"아버지가… 아기 아빠예요."
이 말을 내뱉은 서연이는 입 안을 깨물어 피가 났다. 김서연이, 스물일곱. 두 달 전까지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던 여자였다. 그녀의 신청서에 적힌 이름은 김현수.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남자.
민원실 직원은 서류를 내려놓고 말했다.
"친자 확인은 가능하지만, 형사 고소는… 성년이신데요."
서연이는 허탈하게 웃었다. 민법상 ‘친족상간’은 방계 4촌까지. 그녀와 그는 3촌.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주저했다면, 이 아이는 없었을 텐데.
욕망이 움킨 곳, 가족이라는 방
그가 딸의 아이를 임신시킨 건 우연이 아니었다. 세 사람이 사는 34평 아파트에서, 부인은 새벽 2시까지 약국 알바를 나갔다. 서연이는 TV 앞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오면 끝이야. 이건… 마지막이야.’
그녀의 심장은 이미 자신의 욕망을 부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도, 그는 다가왔다. 서연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속삭였다.
너무 닮았잖아. 너는 네 엄마가 아니라, 내가 낳은 거야.
그 말은 위안이 아니었다. 징검이었다. 그녀는 수년째 엄마를 뛰어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가 그녀를 엄마로 바라보는 순간에만 안도했다. 그 자체가 가장 큰 모욕이었다.
채현주, 그리고 또 다른 아이
2018년 5월, 인천 부평구. 19층 오피스텔.
채현주는 화장실에서 초음파 사진을 들고 울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이미 써져 있었다. 그녀와 그는 14년 전 절친했던 ‘서연이 아빠’에서, 어느 순간 ‘현주 남자’가 되었다.
아빠는 왜 나한테만 그래요?
너는 네 엄마를 닮지 않았거든.
현주는 엄마에게서 도망쳤던 지난 10년의 세월을 그와 함께 보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항상 ‘엄마 대체재’인 양, 그녀가 되지 못한 채 머물렀다. 현주는 스물네 번의 임신 중절을 했다. 그리고 스물다섯 번째, 낳았다.
아이는 옥색 눈동자를 가졌다. 엄마는 그 눈동자를 처음 보자마자 돌아섰다. 그 눈은 바로 그, 아버지의 눈이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반쪽짜리 ‘아빠’였다.
욕망의 구멍, 그리고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
왜 우리는 금기 너머의 욕망에 끌릴까.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역치’라 부른다. 엄마·아빠와의 결핍은 성숙한 사랑이 아니라, 끊임없는 대체 욕망을 낳는다. 서연이가 ‘아버지’라는 단어에 떨지만 동시에 안도하는 까닭이다. 그녀는 사랑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 받을 자격을 얻는 것에 집착한다.
현대의 가족은 더 이상 피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서적 피는 더 강력하다. ‘엄마를 대체하고 싶다’는 욕망은 때로 임신으로, 때로는 외도로, 때로는 딸의 아이를 가지는 것으로 실현된다. 그리고 그 욕망은 항상 뒤늦게야 자신이 무엇을 원했는지를 깨닫는다.
당신은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대체하고 싶은가
아이는 벌써 두 살이 되었다. 서연이는 아직도 아기를 ‘외할머니’라 소개한다. 언젠가 아이가 물을 것이다.
‘엄마… 내 아빠는 누구예요?’
그때 서연이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혹은 속으로 삼킬 것이다.
네 아빠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 중 가장 금기된 사람이야.
그리고 그 말 속에는, 당신도 모르게 품어온 욕망 한 조각이 들어 있을 것이다. 당신의 엄마, 아빠, 혹은 누군가를 대체하고 싶었던 순간이. 그렇게 우리는 모두, 딸의 아이를 임신한 남자처럼, 자신이 허락하지 못한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
당신이 품은 금기, 그 끝에서 당신은 누구를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