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치명적 바이러스―19년 부부의 침대 위 금기

남편이 숨긴 HIV 양성 판정서가 발견된 그날, 아내는 침대 시트에서 아직 뜨거운 정액과 추위를 동시에 맞았다. 19년의 침묵이 깨진 순간, 부부는 마침내 서로의 몸에 남겨진 복선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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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바이러스―19년 부부의 침대 위 금기

민수의 지갑에서 발견된 종이는 누렇게 변색된 5년 전 진단서였다. 빨간 도장이 찍힌 세 글자, HIV 양성. 그는 19년차 아내에게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고, 입안에 가득 찬 비밀을 꿀꺽 삼켰다.

지은은 침대 끝에 앉아 시트를 움켜쥐었다. 민수가 죽은 지 사흘째, 방안에 아직 정액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는 숨이 차오르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가슴에 안겨 숨을 몰아쉬었는데, 그 숨 속에 숨겨진 병독이 지금 지은의 피부를 간질이고 있었다. ‘이 냄새마저도 날 속인 거야?’


병원 복도는 햇살 하나 없는 형광등 세계였다. 지은이 받아 든 봉투 안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음성

순간 무게중심이 빠졌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공포였다. 19년 동안 매일 밤 민수의 체온에 스며들었건만, 그의 젖은 숨결이 남긴 욕망의 흔적조차 허사가 아니었을까. 지은은 지갑 속 진단서를 다시 꺼냈다. 날짜는 5년 전, 그들이 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던 주였다. 그날 밤 민수는 유난히 깊숙이 들어와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따라 네가 너무 뜨거워.”

지은은 그때 그 단어를 오해했다. 민수가 말한 ‘뜨겁다’는 것은 욕망이 아니라, 자기 몸 안에 번져 있는 병독의 열기였을지도 모른다.


민수의 휴대폰 잠금화면에는 두 사람의 10주년 사진이 걸려 있었다. 흔들린 초점 속에서도 민수는 웃고 있었고, 지은은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있었다. 지은은 사진을 확대해 입꼬리를 봤다. 민수는 웃는 척했지만, 잇몸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이미 5년째 그런 가짜 웃음을 연기해 온 셈이다. 지은은 녹음폴더를 열었다. 마지막 녹음 파일은 길이 12초. 민수의 숨소리가 들렸다. “지… 은… 미… 안…” 그리고 끊김.


지은은 서재 서랍에서 민수의 일기장 한 권을 더 발견했다. 표지에는 **‘지은 전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첫 장은 5년 전이었다.

3월 2일. 양성 반응. 하지만 아직 지은 몸에선 안 나왔다. 약을 먹으면 숨길 수 있다는데, 그게 가능할까. 오늘부터는 콘돔을 끼고 잔다. 아, 하지만 지은이 느낄까 봐 무서워. 그녀는 내가 안에 쏟는 걸 좋아하는데.

지은은 목끝이 메었다. 그동안 민수가 “오늘은 피곤해서”라며 피했던 밤들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그녀는 민수의 거부를 자신의 노화로 돌렸다. ‘내가 매력이 없어졌구나.’ 그러나 민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절제하고 있었다.


병원 옥상에 올라간 지은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수신자는 민수. 메시지 창에 손가락을 얹었다.

나도 너한테 숨긴 게 있어. 민수는 몰랐지만, 나는 이미 3년 전부터 불임 치료를 받고 있었다. 네가 아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못 했어. 우리 서로 끝까지 입 다물었네.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전송 실패가 떴다. 지은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민수가 남긴 진단서를 꺼내 하늘로 들었다. 종이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 순간, 19년의 침묵은 팝콘처럼 터졌다. 치명적 바이러스는 민수 혼자만의 병이 아니었다. 부부라는 관계 전체가 숨겨온, 서로를 향한 끝내 말하지 못한 사랑의 병이었다.

지은은 진단서를 접어 입에 넣었다. 마른 종이는 혀를 간질였지만, 쓴맛은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씹어 삼켰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이제 우리는 똑같이 병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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