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은 침대에 누운 채 혀끝을 굴렸다. 혀뿌리가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져 사포 같은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120시간째 단식 중이다. 입안에서는 철쭉꽃처럼 피 맛이 번졌다. 그때 부엌에서 데워지는 모짜렐라 향이 코를 간질었다.
승현이 피자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치즈는 뜨거운 증기와 함께 기름방울을 터뜨렸다. 지연은 눈을 감았다. 향기가 두툼한 이불처럼 얼굴 위에 드리웠다. 이게 대답이야.
"내가 죽어가는데도 아무 반응 없다면, 이건 사랑이 아니야."
그녀는 단식을 하며 사랑의 시험관에 자신을 가뒀다. 매일 눈을 떠서 천장을 응시하며 체크리스트를 세웠다. 오늘은 승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볼까. 혹은 눈물을 글썽이며 밥을 먹여줄까.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피자 향만 날렸다.
확신은 찾아왔다. 그러나 그건 사랑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고통받는 동안 그는 살아간다. 나는 그 살아감 속에 내가 없음을 확인한다.
은지, 31세, 디자이너
은지는 3일째 ‘정화’를 하고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모눈종이처럼 새까만 굶주림이 격자를 그렸다. 호진은 맥주를 마시며 유튜브를 보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그녀의 속살까지 울렸다.
밤이 되자 은지는 부엌에 나와 물 한 컵을 따라 마셨다. 호진이 문득 물었다.
“배 안 고파?”
“아니.”
“그래? 나는 오늘 무라카미 먹고 싶어서 미치겠네.”
그 순간, 은지의 손에 들린 물컵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그 떨림을 호진에게 보여선 안 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았다. 이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데, 지고 싶지도 않아.
수진, 29세, 마케터
수진은 ‘소리 없는 파업’을 했다. 문득 말을 끊고, 눈길을 피하고, 요리를 멈췄다. 민수는 첫 이틀은 몰랐다. 셋째 날 저녁, 그는 배달앱을 켜며 말했다.
“야, 너 오늘도 안 먹어? 나 혼자 시킬까?”
수진은 대답 대신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안, 그는 내게서 점점 더 멀어진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야. 그 멀어짐.
무관심에 침묵하는 여자들은 사실 계산한다. 단식은 연대가 아닌 고립을 재현한다. ‘내가 죽어가는데도 네가 모른 척한다면,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받지 못하는 고통은 이미 알고 있다. 사랑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고통은 새로운 차원의 권력이다. 침묵은 만드는 말이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 말조차도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침묵은 결국 자기증명에 머문다. 내가 무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을 내가 선택했으니, 내가 패배한 게 아니야.
지연은 침대에 누운 채 한 손으로 배를 쓸었다. 그곳은 텅빈 우주처럼 꺼져 있었다. 승현은 피자를 끝내고 박스를 접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 복도 끝에서 휴대폰 게임 효과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시험은 끝났다. 결과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점수를 확인하는 순간, 언제나처럼 뱃속이 시커먼 구멍으로 번져갔다. 허기는 더 이상 배 속에 있지 않았다. 그건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가느다란 가시가 되어, 가슴 한복판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