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는 너무 높아, 난 결국 손끝도 못 대고 떨어졌다

그를 향한 욕망은 사랑이 아니었다. 나의 가치를 확인받으려는 더러운 계산과 집착이었다. 숫자로 재단되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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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너무 높아, 난 결국 손끝도 못 대고 떨어졌다

벨트가 잠기는 메탈릭한 ‘클릭’. 그리고 뒤이은 한 발짝.
“이 금요일엔 우리 팀 회식이 있어서.”
건반 위에 얹힌 손은 크고 느긋했다. 나는 그 손에 닿지도 못한 채 그의 목소리만 붙잡았다.
또 거절당했다.
그가 일어서며 휴지통에 던져버린 건, 내 하루 전부였다.


그림자 위의 키스

“난 네가 내 레벨을 넘을 수 있을 거라 믿었어.”
그는 판정을 내렸다. 희망이 아니라, 점수였다.

우리 사이엔 핫바가 있었다. 몸무게 3킬로, 연봉 두 배, 몇 번의 인턴십, 점수 따지는 앱. 이 모든 숫자가 하나의 척도로 뭉개져 그의 눈높이를 재었다.
그가 나를 선택하는 순간, 나는 완성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결코 오지 않았다.


김서연이 말했다

서연은 그를 처음 만났다. 디자인 동아리 선배, 2학년 여름밤.
“그 사람은 내가 버스를 놓친 걸 보고 차로 태워줬어.”
“그게 끝이었어?”
“아니, 나는 그걸 시작이라고 착각했지.”

그는 서연을 절대 초대하지 않았다. 다만, 차 문을 열어줄 때마다 잠깐 눈을 마주쳤을 뿐.
서연은 6개월 동안 14킬로를 뺐다. 저녁마다 거울 셀카를 찍어 인스타에 올렸다. 그는 좋아요를 눌렀다. 서연은 그걸 희망이라 불렀다.
“결국 그는 내가 예뻐진 걸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예뻐지는 과정을 보고 싶어했던 거야.”


용산의 다른 이야기

강준혁은 아티스트였다. 전시 한 번만 열면 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준혁은 고시원 옥탑에서 캔버스를 늘렸다. 매주 금요일, 그는 전시장 근처 카페에 왔다.

“이번엔 어때?”
준혁이 혼자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머그컵을 내려놓고 나갔다.

준혁의 그림은 날개를 달고 팔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높았다.
준혁은 전시장 문을 닫고, 아직도 그가 서 있던 지점을 바라봤다. 그는 나를 사랑한 게 아니라, 나를 만들어가는 불길을 즐겼던 거야.


아래에서 바라보는 각도

우리를 끌린 건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던진 기준이었다.
그 기준을 충족하는 순간, 나는 도달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기준은 계속 올라갔다. 90점을 찍으면 95점이 되고, 95점을 찍으면 100점이 되었다.
그 점수는 결코 100이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기준은 내 욕망이 만들어낸 허구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거기 있을 뿐, 내려올 생각은 없었다.


서연이 마지막에 중얼거렸다

"나는 그를 향해 무언가를 버렸다.
그게 사랑이라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내가 버린 건 나 자신이었다.
이제 남은 건 텅 빈 점수판과,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계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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