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현관문이 닫힌 뒤
- 엄마, 정말 가도 돼?
- 가. 맘껏 떠나.
문이 닫히자마자 민서는 죄지은 아이처럼 뛰어갔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흘러나온 눈물이 현관 앞 타일에 작은 얼룩을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닦지 않았다. 얼룩이 말라서 흔적도 안 남을 때까지.
"이제 끝이다."
조용히 중얼거린 뒤, 거실로 돌아가 남편에게 말했다.
- 나도 나간다. 법원으로.
그가 놀라서 고개를 드는 순간, 나는 27년 만에 처음으로 그의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았다.
27년째 잠재워온 갈증
우리는 늘 숙제를 먼저 끝냈다. 아이들 밥, 아이들 학교, 아이들 감정. 그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 사이에 끼어들 틈이 생겼다. 틈은 있었지만 사실 끼어들 욕망은 없었다.
아이가 둘인 동안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침대 머리맡에 항상 흘렀다. 문 앞에서 우리는 숨죽여 키스했고, 아이의 발소리가 들리면 급히 떨어졌다. 그 떨어짐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이 커서 각자 방을 쓰게 된 뒤에도, 우리는 습관처럼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누군가 집에 있으니까, 참을 수 있었지.
이젠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더 이상 참을 이유도 없다. 이상하다. 아이들이 있을 땐 미안해서라도 남편을 사랑해야 했는데, 아이들이 없으니 미안함마저 사라졌다.
그녀가 왜 조용히 웃었는지
사례 1. 수진, 52세
수진 씨는 막내 딸의 결혼식이 끝난 뒤, 신혼부부가 신혼여행길에 오르는 공항 청사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막내였는데, 발길이 떨어지자마자 그녀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남편이 지각한다. 평소 같았으면 전화를 걸어서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 여보, 시간 맞춰 와서 고맙긴 한데… 나 오늘 너랑 같이 안 갈래.
남편은 아직 손에 픽업카드도 들고 있었다. 딸 결혼식 사진이 찍힌 카드. 수진 씨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우리 이혼하자. 더 늦기 전에.
30년 만에 처음 남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수진 씨는 알았다. 아, 내가 지금 즐거운 거구나.
사례 2. 미연, 49세
미연 씨는 결혼 25년차. 둘째 아들이 취직해서 자취방을 얻은 날, 남편과 둘이서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셨다. 남편은 그간 힘들었던 아이들 공부비 얘기를 하며 뿌듯해했다. 미연 씨는 반찬 하나하나에 간을 맞추느라 종이 안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소주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말했다.
- 나도 나갈 거야. 짐 싸서.
남편은 웃으면서 받아치려 했다가, 그녀 표정이 진담인지 알았다. 그날 밤 남편은 거실에서 잤다. 미연 씨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눈을 떴다. 이제 당신 옆에서 숨 쉴 이유가 없어.
뿌리 깊은 금기
아이를 낳고 자라게 하는 동안, 부부는 늘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욕망을 굶겼다. 굶기면 굶길수록 속살은 더 단단해진다. 단단해진 욕망은 결국 터질 날을 기다린다. 아이가 떠나면 그 터짐의 방아쇠가 당겨질 뿐.
심리학자들은 이걸 empty-nest divorce syndrome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름 따위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욕망이 얼마나 오래 참혔는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잔인하게 되갚아주는가.
아이들 앞에서는 연기했으니, 이젠 연기할 이유가 없어.
우리는 그동안 좋은 부모 역할에 몰입해서, 서로의 연인 역할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잊어버린 걸 다시 찾으려 하면, 그건 이미 남의 옷처럼 낯설다. 그래서 차라리 벗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문 앞에 선 당신에게
결혼이라는 집을 나오면서 나는 단 한 가지를 물었다. 이 집에 들어오기 전, 내가 누구였는지 기억하느냐. 남편은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대답할 수 없었다. 다만 떠나는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이제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당신은 지금, 여전히 아이를 위해 참고 있는가. 혹은 아이가 없어진 빈자리를 채우려 다른 누군가를 끌어들이려는가. 아니면, 끝내지도 못한 채 그 빈자리 속으로 자신을 숨기고 있는가.
내일 아침, 현관문 앞에 설 때, 당신은 누구를 위해 신발을 신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