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이혼 후 터질 듯한 자유 뒤에 숨겨진 공허함의 냄새

이혼 후 찾아온 해방감이 오히려 외로움으로 돌아오는 순간. 왜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그것이 너무 무거운지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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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 30분, 냉장고 불빛 아래서

냉장고 문을 열자 개미 한 마리가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어제 틀어놓고 잠든 TV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온다. 이제 아무도 왜 이렇게 늦게 냉장고를 열어 놓고 있냐고 묻지 않는다.

한때는 살림살이 하나하나에 감시를 받았다. 냉장고에 뭐가 있고, 없고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게 지독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누군가 나를 미세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건 나름의 안정이었다. 그게 사라진 지 47일째, 나는 2시간째 냉장고 앞에 있다.


해방이라는 이름의 공허함

이혼 후 처음 맞이한 아침은 무려 11시였다. 그동안 7시에 깨워야 했던 습관이 사라진 것도 잠깐. 이불 끝을 품에 안고 누워 있으니, 이제 아무도 내 잠버릇을 흘끗 보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한 커플이 다퉜다. 여자는 남자가 카톡을 열어보는 걸 싫어했다. 한때는 그런 짓이 굴레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벗어났다. 벗어났는데, 왜 더 답답한 걸까.

"나는 자유를 택했는데, 왜 숨이 막히지?"


두 사람, 두 가지 외로움

1. 지혜의 새벽 3시 시그널

지혜는 이혼 후 처음으로 핸드롤러를 샀다. 세탁기도, 다리미도, 누군가의 잔소리도 없는 집. 그녀는 밤마다 핸드롤러를 들고 거실 바닥을 밀었다. 이제는 누구 앞에서도 청소를 핑계로 숨 쉴 필요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3시. 핸드롤러를 돌리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바닥에 쓰러져 울다가, 이내 다시 일어나 청소를 했다. 그날 밤 그녀는 알았다. 청소라는 게 사실은 누군가에게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는 방식이었음을.

"청소를 끝내고 나면, 그 누구에게도 나는 괜찮은 여자라고 증명할 필요가 없어졌는데... 왜 그래도 계속 청소를 하지?"

2. 민수의 홀로 된 식탁

민수는 이혼 후 처음으로 장을 봤다. 장바구니에 2인분은 무조건 사지 않아도 된다. 냉장고에 무엇이 들어가도, 나가도 아무도 묻지 않는다. 처음엔 해방감이었다. 신라면 한 박스, 소주 두 병만 사면 되니까.

그러나 냉장고가 텅 비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혼자 먹다 보면, 한 끼를 끝내도 냉장고는 여전히 텅 비어 있다. 어느 날은 장을 보러 가다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손에 든 장바구니가 너무 작아 보였다.


왜 우리는 감옥을 그리워하는가

사람은 원래 무리를 지어 살도록 진화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는 그 무리 생활을 극한으로 몰아붙인다. 24시간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틈새를 메꾸는 삶. 그래서 틈이 나면, 나는 내 삶을 망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혼 후 빈 공간은 너무 크다. 그 틈새를 메우던 것이 사라지면, 공기가 너무 차가워진다. 우리는 감옥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감옥이라도 지어줬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자유의 무게

이혼 후 처음 맞이한 주말, 나는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와 같이 있어야 했을 시간. 이제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나는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은 내가 누워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외로움은 단순히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있었다가 없어진 거다. 그 부재가 너무 선명해서, 자유가 갑자기 무게를 느낀다. 나는 자유를 택했지만, 그 자유가 나를 선택했을까?


마지막 질문

혼자 먹는 밥은 왜 입에 안 맞을까. 아니, 입에 안 맞는 게 아니라, 혼자 먹는 거라서 그런 걸까?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밀어내며 얻은 자유가, 왜 이리도 무겁게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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