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열한 살 차이, 숫자가 만든 핑계

딸보다 딱 열한 살 많은 그가 손등으로 내 턱을 쓸었다. 19는 범죄, 20은 욕망이라는 숫자의 마법에 우리는 얼마나 깊이 속고 싶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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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딸보다 딱 열한 살 많았다

“누나, 여기 아직 안 봤어요.”

지하 주차장 차 안에서 그가 손등으로 내 턱을 쓸었다. 차가운 가죽 냄새. 시동은 꺼진 상태였지만 몸이 달아올랐다. 34와 23, 숫자가 머릿속에서 요동쳤다. 딸 생일이 11월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는 딸보다 열한 살 위. 그 한 살 때문에 이건 아직 ‘허용’되는 거리였다.

내가 지금 뛰쳐나가면 되는 걸까, 아니면 문을 잠그고 심장 소리를 더 크게 들어줄까?


숫자는 단지 핑계였다

난 단순히 ‘어린 남자’에 홀린 게 아니었다. 그가 나를 ‘누나’라고 부를 때, 오랜만에 느낀 위선이었다. 12년차 병원 간호사인 나는 항상 선배였고, 교육하고, 책임졌다. 하지만 그 한 마디 안에 ‘누나’라는 호칭은 내가 세운 모든 담장을 한순간에 허물었다.

그는 자격증도, 월급도, 아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만들 수 있었다. 그의 미래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환각이었다. 그가 내 눈동자에 비친 나를 보고 웃을 때, 나는 거대해졌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통제였다.


미나와 정우, 그리고 숨겨진 문서

미나는 7년 차 영어 강사였다. 학원 앞 PC방에서 우연히 마주친 21세 대학생 정우가 그녀에게 반했다. 정우는 키 190cm, 어깨 너비가 미나의 두 배는 됐다. 밥 먹이는 손길이 거칠었다. 미나는 처음엔 ‘너무 어린’ 거라며 그를 차버렸다.

하지만 6월 말, 정우가 시험 끝난 뒤 술을 마시고 학원 문 앞에 와서 기다렸다.

미나 씨, 난 진짜 좋아해요.
너 학생 아니야.
제가 강의 듣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나이가…
미국에선 21살이면 성인이에요. 여기선 20살이면 돼요. 한국 나이 계산은 이상해요.

그날 밤 미나는 정우를 근처 모텔로 데려갔다. 그리고 담배 한 대 피우며 그에게 말했다. “너랑 친구들한테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정우는 이마에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대답했다. “그냐 미나 씨 남자라고.” 그 말 한마디에 미나의 가슴이 미어졌다. 그건 동년배 연인들이 절대 줄 수 없던 감정이었다.


유리는 남편보다 서른 두 살 아래에 빠졌다

유리는 52세, 남편은 56세. 결혼 27년, 막내 자녀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유리는 운전면허 학원에서 20세 필기 강사 하진을 만났다. 하진은 복학을 미루고 있는 상태였다. 유리는 처음엔 그저 ‘예의 바른 아들뻘’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진이 연습장에 ‘유리 선생님’이라고 써준 글씨를 보는 순간, 유리는 갑자기 숨이 막혔다. 그 글씨가 20년 전 남편이 써준 첫 러브레터와 너무 닮아 있었다. 유리는 그때부터 하진의 점심을 사주기 시작했다. 하진은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저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 남편 분이 부럽네요.

그 말 한마디로 유리는 가슴이 따끔거렸다. 자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하진도 모르고 있었다. 유리는 그때부터 하진과의 키스를 상상했다. 그리고 그 상상은 어느새 현실이 되었다. 하진의 뺨에 키스할 때마다 유리는 느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늙어가는 자신의 속도를 거꾸로 돌리는 주문이었다.


왜 우리는 젊음의 얼굴을 향해 뛰어드는가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자기연령 회귀 욕망’이라 부른다. 나이 든 사람이 자신의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것. 하지만 단순한 회귀가 아니었다. 그 어린 육체 위에 내 과거를 덮어씌우는 행위였다. 그들이 나를 ‘선배’ 혹은 ‘누나’라 부를 때, 나는 그들의 미래를 쥐고 있었다.

사실은 그 반대였다. 그들은 나의 과거를 쥐고 있었다. 나는 젊음이 주는 ‘무책임’을 빌려오고 싶었다. 나이 차이가 클수록, 그들이 가진 ‘아직은 처벌받지 않는’ 자유가 나를 자귱했다. 나는 그들을 통해 내가 버린, 혹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으려 했다.


너는 어느 나이까지 허락할 수 있을까

숫자는 결국 우리가 책임을 떠밀려 보내는 밀실의 문이었다. 19살 364일은 금기, 20살 0일은 욕망. 그 한날차이가 우리를 구원할까. 아니면 단지 핑계일까.

당신에게 묻는다. 만약 숫자가 없었다면, 당신은 아직도 그를 끌어안고 있었을까. 아니면 미처 몰랐던 공포를 마주하고 도망쳤을까.

숫자는 끝까지 우릴 지켜주지 못한다. 중요한 건 몇 살 차이인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속고 싶어하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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