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날 밤, 우리의 상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멈췄다

호텔 룸으로 향하기 직전, 세 사람이 맞닥뜨린 침묵과 그 너머의 욕망. 상상은 끝내 현실로 넘어가지 못했다.

부부상상금기호텔침묵

진우가 잔을 내려놓았다. 테이블 위 맥주가 미세하게 진동하며 빛을 뿌렸다. 유리 너머, 지연이가 앉아 있었다. 새 블랙 드레스가 몸에 달라붙어 숨을 뱉는 듯했다. 진우의 시선이 그녀의 발끝에서 허리를 거쳐 어깨를 지나 눈에 닿았을 때, 나는 알았다. 이 남자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시 지연이가 조금 더, 다른 남자에게 집중하고 있지 않았을까.’

처음 떠오른 상상은 복도에서였다. 이웃 남편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웃었을 때, 지연이도 함께 웃었다. 그 찰나의 미소가 내 안에 흑백 화면처럼 박혔다. ‘저 남자가 지연이를 만지면 어떨까’ 하는 가장 진한 그림자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그 상상은 더 선명해졌다. 침대 위, 그녀가 눈을 감고 미소 짓는 순간. 그 끝에 내가 서 있었다. 숨을 죽이고, 벽에 기댄 채.

왜 내 심장은 이렇게 뛰는가

처음엔 말이 없었다. TV 리모컨이 손에 닿아 있었고, 화면 속 배우가 허공에 입을 맞췄다. 지연이가 물었다.

“혹시… 그런 상상 해 본 적 있어?”

“무슨 상상?”

“나랑 다른 사람.”

숨이 멎었다. 그녀는 말했다. 똑같은 환상을, 똑같은 밤을. 내가 욕망하던 대답이 아니라, 그녀도 혼자 꿈꾸어온 그림자였다는 말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서로의 몸을 더 세게 찾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불꽃은 더 높이 치솟았다. 서로의 피부를 더듬으며, 우리는 동시에 다른 누군가를 불렀다.

진우를 택했다. 대학 동창, 딱 다섯 번째 연락이 끊긴 지점에서 다시 잡은 사이. 믿을 만하고, 그렇다고 너무 가까워서는 안 될 적당한 거리감. 카톡방에 그를 초대했을 때, 진우는 잠깐 ‘…’만 찍었다.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그냥 술 한잔 하자. 오랜만에.

우리는 호텔 바에서 만났다. 지연이는 새 블랙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진우는 처음엔 눈치를 못 챘다. 그녀가 진우 옆에 앉으며 다리를 살짝 건너댈 때도, 진우는 그저 예의바른 미소만 지었다. 그러나 나는 봤다. 그의 넥타임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사실, 우리 아내가 너한테 관심 있대.”

말이 손끝에서 튀어나왔다. 진우가 술을 머금은 채로 나를 바라봤다.

“뭐?”

“나도 괜찮아. 너랑 지연이가, 그러는 거 말이야.”

잔이 테이블에 닿는 소리. 진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지연이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작게, 하지만 확실하게.

나는 왜 이토록 초콜릿처럼 검은 환상에 젖어드는가

니코, 34세, 게임 디자이너

처음엔 포르노에서 봤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화가 나기보단 흥분이 먼저 왔어요. 아내 사라랑 이야기하다 보니 그녀도 비슷한 상상을 했대요. 그래서 한 번 진짜 해봤죠. 저녁 식사 후, 친구 집에 갔어요. 전 조용히 거실 소파에 앉았고, 사라는 방문을 닫고… 그래요. 근데 그때 심장은 막 타닥타닥 뛰었어요. 두려움과 흥분이 뒤섞여 숨이 막혔죠. 그리고… 그 후로 다시는 안 했어요. 그날 밤 사라가 돌아와 말했거든요. *“나도 네가 그 사람한테 집중하는 상상을 했어”*라고. 그 순간, 제가 뭘 원했는지 알았죠. 그건 그녀가 아닌 내가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었던 거예요.

호텔 엘리베이터 안. 지연이의 손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진우는 말없이 우리 뒤를 따랐다. 문이 열리고, 침대가 보였다. 시트가 새하얗게 펴져 있었다. 에어컨 바람이 스르륵 불어왔다. 지연이의 숨결이 내 볼에 닿았다. 뜨거웠다. 진우는 문고리를 잡은 채 서 있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맥주를 마셨다.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현실은 상상보다 초라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걸까. 아니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상상이 깨져버릴 때의 허무함이었던 걸까.

지연이가 잠든 새벽, 나는 혼자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 그날 밤 우리가 정말 원했던 건, 서로를 더 뜨겁게 원하게 만드는 금기 그 자체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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