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여덟 살, 엄마 속옷 서랍에 손을 넣었던 나는 지금도 그때의 열기를 혀 끝에 품고 산다

여덟 살, 엄마 침실 서랍을 연 순간의 떨림. 그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만지는 짜릿함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누군가의 잠긴 서랍 앞에서 숨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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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못 건드는 거야" 라는 말이 문 앞에 붙어 있었다

나는 손바닥에 든 열쇠가 너무 작아서 아찔했다.
1997년 7월, 방 한복판에 내려앉은 오후 네 시 햇살이 침대 골격을 핥고 있었다.
엄마가 마트 간 사이, 40분. 나는 이미 세 번이나 복도 끝 침실 문 앞을 지나쳤다.
네 번째일 때 손이 벌써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문 손잡이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왜 나는 입안이 쪽 빠질 만큼의 긴장을 하고 있을까.

서랍장 맨 아래 칸. 검정색 플라스틱 손잡이를 당기는 순간, 나지막이 끽 하는 소리가 났다. 냄새가 먼저 걸렸다. 비누와 피부, 그리고 무언가 낯선 달콤한 가루 냄새. 브라컵 안쪽의 실크 끈자락이 손등을 간질었다. 나는 한 장을 꺼냈는데도 살짝 말라 죽은 나비처럼 흔들렸다.


그때 나는 왜 숨을 멈췄을까

태어나서 처음 맛본 공기의 무게다.

여덟 살엔 ‘성욕’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그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손끝이 떨리는 건 흥분이 아니라 ‘들킬까’ 두려움이었다. 끈적임이 남은 손바닥을 청바지 뒤태에 문지를 때까지도, 나는 무엇을 원했는지 몰랐다.

어린아이는 금기를 부수는 즉흥적 기쁨에 노출된다. 욕망이라 이름 붙이기엔 순수한 형태지만, 그 손길은 이미 브랜딩된다.


첫 번째 사례: 미도리와 꿀잠 속옷셋트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미도리(가명·19)는 엄마의 신혼 여행 가방을 옷장에서 발견했다. 체크무늬 파우치 안쪽, 1990년대 레이스 세트가 한 벌 남아 있었다.

미도리: "처음엔 그냥 궁금했어요. 엄마가 어떻게 입었을까, 정도였죠."
며칠 뒤 그녀는 세탁이 안 된 듯한 흔적을 발견했다. 자기가 아닌 누군가 손에 넣었다는 증거. 

결국 미도리는 세트를 몰래 가져와 밤마다 착용했다. 아버지와 엄마가 거실에서 TV 보는 소리가 들릴 때, 그녀는 이불 안에서 숨을 죽였다. 이건 엄마 아빠가 한 번 입었던 거야. 두려움과 흥분이 동시에 사지를 타고 퍼졌다. 한 달 뒤, 엄마가 세트를 찾는 통에 미도리는 파우치를 옥상 화단에 묻었다. 흙 냄새가 섞인 레이스는 여전히 서랍장 끝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두 번째 사례: 수호와 돈까스 어린 날의 블라우스

회사원 수호(가명·34)는 스무 살 여름, 처녀모임에서 듣게 된다. "니 엄마 블라우스, 내가 봤는데 진짜 섹시하더라." 친구는 농담이었지만 수호는 그날 저녁 엄마의 옷장을 열었다.

1998년식 곰돌이 패턴 블라우스. 어린 시절, 엄마가 돈까스를 사러 입고 나갈 때마다 따라붙던 옷이었다.

수호는 블라우스를 꺼내 침대에 누워 얼굴을 묻었다. 세월이 빠진 향수 냄새가 나 코끝을 찔렀다. 그날 이후 수호는 지하철에서 흰 블라우스 입은 중년 여성을 볼 때마다 왜 첫사랑 아닌 그 향기를 떠올리는지 모른다. 그 욕망은 엄마를 향한 게 아니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만질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이었다.


금기가 우리를 붙드는 방식

심리학자 로렌스 칼버그는 도덕 발달 단계에서 8세를 ‘타인의 기대를 중시하는 시기’라고 했다. 그 시점에서 부모의 영역은 물리적 경계를 넘어 정서적 경계로 확장된다.

금기의 본질은 위험 감각이 아니라 ‘나는 이 공간에 아직 초대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서랍 손잡이를 돌릴 때 우리는 미래의 자신을 부르는 셈이다.

금기를 넘는 순간, 우리는 자라나고 있음을 배웠다. 떨림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라는 고백이었다. 그 고백은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 더욱 격렬했다.


당신은 여전히 그 서랍을 열고 싶어 하는가

어른이 되어 돌아보면,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침실 문 앞을 지난다. 비밀번호 걸린 휴대폰, 잠긴 일기장, 남편의 클라우드 폴더. 어쩌면 여덟 살 그날의 손가락 끝보다 더 민감해졌다.

그 떨림 뒤에 숨겨진 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너는 이제 막 ‘너 자신’의 욕망을 범죄라는 이름으로 배우고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누군가의 열쇠 없는 서랍장 앞에 서 있다. 손이 닿기 직전, 너는 그날의 여덟 살처럼 숨을 멈추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조용히 손잡이를 돌렸는가.


그 손끝에 아직도 열기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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