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8년 연애의 끝, 새 남자가 침대 위로 내려놓은 그 물건 하나

8년 연애 중 새 남자가 나타났다. 그날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갔다. 왜 우리는 끝까지 붙잡는가, 그리고 왜 더럽게도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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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연애의 끝, 새 남자가 침대 위로 내려놓은 그 물건 하나

"지금 그 사람이 우리 침대에 누워있어."

문자 한 줄이 남자친구, 아니, 8년 연인 지훈의 폰에 떴다. 새벽 2시 43분. 화장실에서 본 그 메시지는 나를 발가벗겼다. 보낸 사람은 낯선 여자 이름이었다. 그녀는 ‘우리’ 침대라는 단어를 고의로 사용했다.

나는 침대 옆 조명을 켜고 지훈의 눈꺼풀을 참새처럼 톡톡 건드렸다. 잠꼬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쳤어? 새벽에..."

"지훈아, 눈 떠봐. 누군가 네가 지금 여기 있는 게 싫대."


눈 뜨는 순간의 선택

그날 나는 두 갈래 길을 떠올렸다. 물러서거나, 더 깊이 들어가거나.

그녀는 무슨 색 브라를 하고 있을까.

순진한 생각이었다. 8년이라는 시간은 갑자기 민망해졌다. 우리가 싸우고 화해하고 반복하던 루틴은 ‘지루함’이 아니라 ‘익숨’이라는 이름의 가죽끈이었다. 그 가죽끈을 누군가 가위로 딱 자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게 사랑이 아니라 권력 싸움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자 이름은 수진

수진은 지훈의 새 회사에서 일한다. 신입이라고 했지. 나도 한 번 본 적 있다. 퇴근길 회사 앞에서 지훈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우리 팀 신입이야."

그녀는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있었다. 지훈은 그녀에게 내 소개를 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지훈의 눈빛이 한 칸 어긋난 걸 느꼈다. 눈빛 하나가 먼저 가버렸다.

"차라리 네가 마음이 떠났으면 좋겠어."

나는 말했다. 지훈은 눈을 피했다. 그래, 이건 항복이 아니라 역습이었다.

새로운 남자는 준혁이었다

준혁은 내 아랫집에서 산다. 한 달 전 이사 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머리를 묶은 채 쌀가루 냄새를 풍겼다. 그가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 계셨군요. 저, 203호요."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준혁은 수줍은 듯 웃으며 말했다.

"혹시... 고양이 키우세요? 밤마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아니요. 남자친구가 자면 때려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준혁의 눈이 흔들렸다. 그날 밤 지훈이 먼저 잠든 뒤, 나는 현관 앞에 놓인 포스트잇을 봤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우리는 왜 이것에 끌리는가

심리학자들은 이를 ‘상실의 공포’라 부른다. 하지만 그건 너무 말끔한 설명이다. 더 정확한 단어는 ‘파괴욕’이다.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그것을 완벽하게 망가뜨리고 싶어졌다. 그래야 비로소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지훈이 나한테 미안해하는 모습.

그게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준혁의 집에 갔다.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그는 민망한 듯 웃으며 맥주 두 캔을 꺼냈다. 우리는 소파에 앉았다. 그의 머리 냄새가 났다. 아직 마른 샴푸 냄새.

"여자친구 있어요?"

"아니요." 준혁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근데... 뭔가 복잡해 보여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마트폰 사진첩을 열었다. 지훈과 나, 8년 전 첫 데이트 사진. 지훈이 어색하게 V를 한 장면. 준혁이 그 사진을 내려다봤다.

"사랑하잖아요."

"그래. 그래서... 끝까지 붙잡고 싶어."


침대 위의 물건

그날 밤, 나는 준혁에게 말했다.

"도와줘. 이 사진을 지훈한테 보내줘."

그건 내가 준혁의 침대 위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착시를 만들어서 보내면 된다. 준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이게... 맞는 건가요?"

"맞고 틀린 게 아니야. 그냥 내가 사는 거야."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사진을 지훈에게 보냈다. ‘새벽 3시 12분.’ 메시지와 함께.

지훈은 5분 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어디야?"

"준혁이 집이야."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지훈이 말했다.

"내려와. 지금."

나는 고개를 들었다. 준혁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이 흔들렸다. 뭔가를 말하려다 이마를 긁었다.

"끝나면... 다시 여기 올 수 있겠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현관을 나섰다. 엘리베이트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이게 사랑이 아니라 전쟁이라면, 누가 승자일까.


마지막 질문

지훈은 문 앞에서 나를 맞았다. 눈이 붉었다. 그가 말했다.

"미안해."

나는 그를 바라봤다. 8년 동안 처음으로, 나는 지훈의 눈에서 공포를 봤다. 그 공포는 내가 원했던 것일까. 아니면...

지훈이 없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서로를 부숴봤다. 부서진 조각 위에서 우리는 다시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준혁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는 아직도 여기 있어.’

당신은 지금 이 순간, 놓지 못할 손을 떠올리고 있는가. 그 손이 당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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