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이혼 1년 차, 새 남자의 침대에서 나는 왜 젖지 않는가

완벽한 새 연인의 침대에 누웠지만, 몸은 건조하다. 차가운 침대 시트 위, 그녀는 떨지도 축이지도 않는다. 얼음처럼 굳어버린 욕망과 기억 사이, 한 방울씩 녹아내릴 날을 기다리며.

이혼침실욕망몸의 기억새벽
이혼 1년 차, 새 남자의 침대에서 나는 왜 젖지 않는가

“이봐, 너 지금 나랑 자는 거 맞아?”

승우의 숨결이 귀를 스친다. 새벽 두 시 반, 옆방에서 들려오는 아파트 경비실 라디오 소리마저 잦아들 무렵이다. 그의 손바닥이 내 허리를 타고 올라온다. 뜨거운데도, 왜 이리 차갑게 느껴지는지.

손길은 뜨거운데, 피부는 얼음장.

침대 시트는 새 것. 120수 이집션 코튼, 샴페인 색. 승우는 작은 것 하나까지도 신경 쓴다. 전등 스위치는 방석 위에, 물병은 뚜껑 열기 편하게, 콘돔은 서랍 안쪽이 아닌 책상 위에 놓았다. 완벽한 섭외. 근데 왜.

나의 가슴은 고요하다. 온몸의 피가 발끝으로 빠져나간 듯, 아무 떨림도 없다. 그의 손가락이 브라 후크를 풀자, 흩날리는 머릿결처럼 기억이 흩어진다. 지난겨울, 오래된 아파트에서 난방비 아끼느라 두꺼운 패딩 입고 끌어안던 남편의 체온이—.

아, 그래. 그가 아직 내 온도계에 남아 있구나.


Day 412

이혼 서류에 서명한 지 412일째. 승우는 ‘처음’이었다. 184cm, 700대 1 연봉, 강남 아파트, 느긋하고, 절대 화내지 않는 남자. 그는 매일 밤 나를 ‘안녕’ 하고 부른다. 문자에는 이모티콘 두 개, 전화는 늘 30초 안에 받는다. 안심할 구석이 많다.

그런데도, 침대에 누우면 시체가 된다.

완벽하지만, 틈이 없어.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매번 생각한다.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든 망가뜨리지 않을 거야.’ 그래서인지 성급해지지 않는다. 나를 부수지 않을 사람 앞에서는, 오히려 내가 먼저 부서질까 봐 두려워진다.


유진에게서 들은 말

지난주, 유진이 술잔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36세, 디자이너, 5년 전 이혼. 그녀 역시 똑같은 곳에 서 있다.

“밤마다 손을 잡아 주는데도, 가슴이 안 뛰어. 그 사람은 나를 안 다치게 하려고 무릎을 꿇는데, 내 몸은 계속해서… 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잠시 숨을 고르고, 유진은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떨렸다.

“계속해서 ‘죽은 자리’에 가만히 있어.”

그 말이 목끝까지 파고들었다. 죽은 자리. 결혼 생활 끝자락에서 나는 매일 그 자리에 있었다. 누가 먼저 사과할까, 누가 먼저 떠날까—그런 전쟁 끝에 항복한 채, 침대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있던 기억이.


얼음물이 되기까지

승우의 손이 내 복부를 지난다. 그가 말없이 키스하려 하자, 나는 고개를 돌린다. 침실 조명은 2700K, 눈부시지 않게 조심스럽다. 그는 내 어깨를 쓸며 속삭인다.

“오늘은 그냥 잘까?”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손등을 만진다.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얼음장처럼 느껴지는지. 어쩌면 내 몸이 아직도 **‘그날의 얼음물’**에 잠겨 있기 때문일지도.


그날의 기억

이혼 전날 밤, 우리는 마지막으로 같은 침대에 누웠다. 히터는 고장 나고, 창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난방비를 아끼려고 그랬다. 서로의 몸을 품었지만, 둘 다 떨지 않았다. 얼음물이 되어 있었다. 서로의 손을 잡았지만, 아무 것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뜨거운 물을 마셔도 속이 녹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새 남자의 침대에서

지금, 승우는 내 머리맡에 이마를 대고 있다. 그는 내가 원하는 만큼 기다릴 수 있다고, 몸이 반응할 때까지 천천히 녹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무섭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내 몸에서 **‘미움’**이라는 단어가 빠져나가고, ‘욕망’이라는 단어가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는 걸 안다.

나는 그의 품에 안기면서도, 눈을 감으면 또렷이 본다. 오래된 아파트에서, 창문 틈으로 스미는 새벽 공기처럼 차디찬 그날의 온도를.


아직 녹지 않은 자리

그래, 아직이다. 나는 승우를 밀어내지 않는다. 냉장고 문을 열어둔 채로, 그의 품에 머문다. 아직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지만, 차가운 칼날이 피부를 스치는 듯한 두려움은 조금씩 사라진다. 아직 얼음물이지만, 한 방울씩 녹고 있다.

그래도 오늘밤은, 그의 손끝이 내 발가락을 어루만질 때, 조용히 말한다.

“조금만 더 천천히, 아직 나는...”

승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마를 내 머리카락에 묻는다. 차가운 침대에서, 우리는 서로의 숨결이 닿을 때까지 기다린다. 언젠가, 정말로, 녹아내릴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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