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조금 더 끝까지"
우리는 아무도 없는 지하 주차장 차 안이었다. 시동은 꺼져 있고 유리에는 희미하게 입김이 서렸다. 그가 대시보드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내 머리를 아래로 눌렀다. "됐어?" 물었지만 실은 이미 끝났다는 신호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더 깊이.
끝내 달라는 게 아니야. 끝장을 보자는 거지.
그때까지 숨이 막히는 게 아니라, 숨이 막혀야만 비로소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
욕망의 해부
우리가 원하는 건 단순한 구강 성교가 아니다. 목 깊숙이 묻히는 순간, 억지로 삼키는 자신의 모습을 목도하는 쾌감. 바닥까지 내려가야만 비로소 ‘나’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기이한 안도감.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기무시의 전복적 쾌감이라 부른다. 일상에서 완벽하게 통제하던 자신을, 단 몇 초 만에 완전히 무기력하게 만드는 행위. 그래서일까. 경력 주부 H씨는 아이들이 잠든 뒤 남편에게 "내가 되도록 아프게 해줘"라고 말한다. 통증은 증거다. 여기까지 내려왔다는,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인장.
서린의 목요일 밤
서린, 31세 UX 디자이너. 평소엔 회의실에서 가장 냉정한 논리를 내세우는 여자. 그녀는 지난 겨울, 회식 뒤 남자 동료 민재와 지하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을 절대 잊지 못한다.
민재는 처음엔 조심스러웠다. 입 안 가장자리만 간질였다. 그러나 서린은 머리를 더 세게 잡아당겼다. 민재가 놀라 멈췄을 때, 서린은 눈을 들어 말했다.
차라도 마신 것처럼
거기까지 밀어 넣어줘
아니면 나 오늘 밤 잠 못 자
민재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붙잡았다.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공포감이 들었지만 동시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날 밤 서린은 집에 돌아가 욕실 바닦에 무릎을 꿇고 울었다. 왜 울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음 주 목요일엔 다시 민재에게 문자를 보냈다.
두 번째 이야기 - 나현, 27세, 대학원생
나현은 여자 친구 지아와 3년 째 연애 중이다. 평소엠알몸도 서툰 나현이었지만, 지아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손가락 모양의 실리콘 도구를 꺼내 지아의 입에 넣으면, 나현은 문득 손을 멈췄다. 지아는 눈을 감고 한쪽 손으로 나현의 손목을 잡았다.
더 깊게, 내가 말 못 하게
나현은 눈을 감았다. 손목을 잡은 지아의 손가락이 조금씩 힘을 줬다. 지아가 지금 나에게 느끼는 게 무엇일까. 분노, 연민, 혹은 동일한 욕망? 나현은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도구를 밀어 넣었다. 지아의 몸이 경직됐다가 곧 이완됐다. 눈물이 액체처럼 아래로 흘렀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다.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지배하는 ‘완벽한 나’의 탈을 쓰고 산다. 하지만 그 탈 뒤에선 부서진 욕망이 숨죽이고 있다. 목 깊숙이 무언가를 삼키는 순간, 그 탈은 벗겨진다. 숨도 못 쉴 정도로 내려가야만 비로소 ‘나는 더는 무엇도 통제할 수 없다’는 고백이 가능해진다.
그 고백은 잔인하면서도 천사처럼 순결하다. 우리는 그래서 기꺼이 목끝까지 내려간다. 그래야만, 끝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마지막 질문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무엇을 삼키지 못해 밤마다 숨이 막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