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녀가 숨을 멈추는 척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남자가 되었다

가짜 CPR 연습에서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나는 소년의 눈동자를 뒤로 물리쳤다. 숨멎과 부활의 리허설 끝에서 우리는 서로에게서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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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숨을 멈추는 척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남자가 되었다

옥상, 새벽 4시 12분, 공기는 살얼음

"너, 진짜 남자 맞아?"

하진이 물었다. 우리는 학교 옥상 난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서울의 불빛이 아래에서 숨을 죽이고, 달빛은 철조망 위로 살짝 기어올라 우리 발끝을 비췄다. 캔맥주는 이미 열 두 캔째. 입안이 쓰고, 손끝은 저릿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차가운 피부 아래 맥박이 두근거렸다. 하진이 내민 손바닥에는 작은 나이프가 들려 있었다. 손잡이는 핑크색 플라스틱, 날은 둥글게 깎아 세운 듯했다. 장난감처럼 보였지만, 그게 우리만의 게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죽는 척, 해볼까?"
그녀가 속삭였다.
"그럼 네가 살려줘야 해. 진짜처럼."


첫 번째 리허설, 지하 베이스룸

빈 강의실 지하. 공기는 곰팡내와 복사잉크 냄새로 가득했다. 우리는 책상 하나를 밀어 벽에 붙이고, 그 위에 하진을 눕혔다. 형광등은 반쯤 깜빡이고 있어 그림자가 심장박동처럼 흔들렸다.

하진이 눈을 감았다. 가짜로. 숨을 참았다. 가짜로. 손목에 검은 리본을 묶었다. 장식이 아니라, 경계선이었다. 이쪽이 죽음, 이쪽이 삶.

나는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두 손을 포개고, 힘주어 눌렀다. 30번. 1, 2, 3… 숫자는 턱 끝에서 떨렸다. 허리를 숙여 입을 맞췄다. 숨결은 따뜻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가슴도, 딱딱한 이빨도 없었다. 살아 있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했다.

"이제 넘어가."
하진이 속삭였다.
"더 깊이."


두 번째 리허설, 뒷산 풀숲

수요일 밤, 우리는 학교 뒷산으로 올랐다. 가방 안에는 시트지와 촛불 한 묶음이 들어 있었다. 풀밭 한복판에 시트를 펴고, 하진을 눕혔다. 촛불을 둘러싸고 켜면, 불꽃이 우리만의 수술실이 되었다.

하진이 눈을 감았다. 이번엔 더 오래. 20초, 30초, 45초… 나는 그녀의 가슴을 눌렀다. 힘을 주었다가 뺐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숨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내 손은 떨렸다. 누가 더 진지할까.

"살려줘."
하진이 입을 벌리고, 짧은 한숨을 뱉었다. 목소리는 메말랐다. 나는 그녀의 가슴을 다시 눌렀다. 이번엔 더 세게. 촛불이 흔들렸다. 그림자가 춤췄다. 하진의 몸이 크게 일렁였다.

"이제 됐어."
그녀가 눈을 떴다.
"너, 굳었잖아."


욕망의 해부, 소년에서 남자로

소년이 남자가 되는 순간, 누군가는 반드시 숨을 멈추는 해야 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다치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연인은 서로에게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숨멎은 연습이고, 부활은 통과 의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운다. 죽음은 성장의 문지방. 영화 속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절망한다. 절망 위에 서서 남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더 교묘하다. 실제로 죽일 필요는 없다. 죽은 척만 하면 된다. 여자는 시체 연기를, 남자는 구해주는 연기를.

여자는 숨을 멈춘다.
남자는 숨을 불어넣는다.
무대 위에서만, 그리고 서로의 몸 위에서만.


세 번째 리허설, 도서관 지하 창고

금요일 밤, 우리는 도서관 지하 창고에 숨어들었다. 고장난 형광등 네 개가 내뿜는 빛은 시시각각 색을 바꿨다. 하얗다가 노랗다가 푸르다가 다시 꺼졌다. 창고 한가운데, 낡은 매트리스가 놓여 있었다. 누가 버린 건지, 아니면 우리만의 제단인지.

하진이 매트리스에 누웠다. 이번엔 눈을 감지 않았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목을 가리켰다. 여기. 나는 손가락 두 개를 그곳에 얹었다. 살짝 눌렀다. 맥박이 튀었다. 하진이 숨을 들이마셨다. 살짝 아프다는 듯이, 살짝 즐거운 듯이.

"더 세게."
그녀가 말했다.
"진짜로 못 숨 쉬게."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3초, 5초, 7초… 하진의 눈이 흐려졌다. 눈꺼풀이 떨렸다. 그러나 나는 멈췄다. 손을 떼고, 허겁지겁 그녀를 끌어안았다. 가슴이 맞닿았다. 숨이 섞였다.

"이제 됐어."
내가 말했다.
"이제… 나도 몰라."


욕망의 전환, 거짓 CPR에서 진짜 숨결로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연습하지 않았다. 대신 숨을 나누었다. 아래층 화장실 칸에서, 옥상 난간 뒤에서, 빈 강의실 뒷문에서. 하진의 숨이 내 목에 닿을 때, 나는 소년의 눈동자를 뒤로 물렸다. 그녀가 숨을 들이키면, 나는 남자의 숨을 내쉬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게임을 끝냈다. 숨멎은 연습이 아니라, 숨겨진 숨결이 되었다. 하진은 더 이상 죽는 척하지 않았다. 대신 내 손을 잡고, 내 입을 맞추고, 내 가슴에 귀를 기울였다. 소년은 사라졌다.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았다.

"사실은…"
하진이 말했다.
"너한테 숨 넣어줄 때, 나도 남자가 되는 기분이야."


마지막 리허설, 필요 없는

졸업 날, 우리는 다시 옥상에 올랐다. 여섯 시, 아침 해가 서울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하진이 내 손을 잡았다. 맥박이 뛰었다. 살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숨결이 섞였다. 입술이 닿았다.

죽음은 오지 않았다. 대신 삶이 왔다.
소년은 사라졌다.
남자는 숨을 쉬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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