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아침 7시 12분, 같은 문장이 날 찌른다
“카페인 조금만 넣어.”
그가 내뱉은 네 글자가 내 귀를 뚫고 나가는 동안 나는 벌써 세 번째로 그를 죽였다.
물이 끓는 소리, 우유 거품기의 윙윙거림, 내 숨소리만이 아파트를 채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도 좋다던 ‘충분히 단’ 원두맛을 3,653일째 입에 담고 있다.
카운터 위에 놓인 칼이 번쩍인다. 그의 목 위에 놓으면 차가운 칼날이 뜨거운 피를 찾아갈까.
욕망의 해부: 반복이란 이름의 살인
나는 왜 그가 새로운 말을 내뱉지 않는지를 원망하는가, 아니면 내가 뱉을 수 없는 말을 그가 대신 말해주길 바라는가?
결혼 10년차의 고통은 대개 ‘같은 일상’이 아니라 ‘같은 말’에 있다. 말이란 언제나 먼저 상대를 지우고 그 자리에 자신만의 세계를 덮어버리는 폭력이다.
그가 “카페인 조금만 넣어”라고 말할 때마다, 그는 나를 없애는 셈이다. 내가 원하는 농도, 내가 즐기는 쓴맛, 내가 그날 느끼는 감정—모두 지워진다.
반면 나는 순간순간
- 그의 카페인 농도를 두 배로 올려 심장이 터지게 만들고
- 우유에 수면제를 타서 영원히 깨지 못하게 만들고
- “나 오늘은 네가 없었으면 좋겠어” 하고 속삭이고 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는 그저 조용히 ‘카페인 조금만’을 따라준다. 이 조용한 복종이 더욱 잔인한 살인이다.
실제 같은 이야기 1: 서현의 일기장
서현, 38세. 두 아이의 엄마. 마지막으로 일기장을 쓴 건 5년 전.
[2024. 3. 15]
오늘도 남편은 출근길에 “빨리 가자, 늦었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지난 1,825일 동안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늦은 게 아니라 네가 이 결혼을 늦게 시작했어’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뒷좌석에서 조용히 스마트폰을 본다. 그들 역시 말이 필요 없어졌다. 엄마는 엄마처럼, 아빠는 아빠처럼. 모두가 할 일만 하면 된다.
오늘도 나는 꺼내지 못한 한 줄을 삼켰다. 그 한 줄이 쌓여서 나는 작년에 처음으로 ‘혼자만의 아파트’를 알아봤다. 반지값 말고 보증금을 말이다.
실제 같은 이야기 2: 지우의 음성메모
지우, 42세. 남편은 45세. 대기업 부부.
밤 11시 48분, 녹음 버튼을 눌렀다.
“오늘도 똑같다. TV 앞에서 똑같은 소리, 똑같은 한숨.”
“‘졸려, 자자’라는 말은 3,652번째다. 섹스도 3년째 똑같은 체위다. 나도 그래야 하나?”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나는… 나는 그냥 한 번만, ‘오늘은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우리 침대에 죽어도 좋다.”
음성메모는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녹음이 꺼진 뒤에도 지우는 2분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금기와 집착의 뿌리
“새로운 말”은 곧 “새로운 관계”를 낳는다는 두려움.
우리는 반복을 싫어하면서도 반복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다. 왜냐하면 반복은 ‘변하지 않는 사랑’의 증거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결혼 10년차 부부가 느끼는 고통은:
- 말의 퇴화: 처음엔 사랑의 말이었던 것이 지시의 말로, 다시 ‘아무 말도 아닌 말’로 떨어진다.
- 살인적 익숨: 상대를 죽이는 말이 반복되면, 그 말은 상대를 ‘이미 죽은 존재’로 만든다.
- 집착의 딜레마: 새로운 말을 원하면서도 새로운 말이 파괴할지도 모르는 관계를 두려워한다.
결국 우리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남편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그런 말에 아직도 반응하는 나’를 혐오한다.
마지막 질문: 당신은 지금 몇 번째 살인을 꿈꾸고 있는가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는 “카페인 조금만” 혹은 “출발할까”라는 말을 들으며 허공에 칼날을 휘두른다.
그런데 당신은 아직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말이 그칠 때, 당신은 살아 있을까, 아니면 마침내 죽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