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엘리베이터 안, 그가 뒤에서 한 걸음 다가섰을 때였어. 숨결이 목덜미를 간질였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버튼 누를까?" 그의 목소리가 귀에 닿는 순간, 나는 이미 회사 복도 벽에 그를 누르고 있었다.
첫 손끝이 닿기 전에
허물조차 없는 그의 손등이 내 팔끝을 스쳤을 때, 나는 이미 옷 위로 그의 손가락을 따라 올라가는 상상을 끝냈다.
이게 정상이야? 단 하루 만에 이렇게 되버린 거야?
아니, 첫 눈이었을지도 몰라. 그가 "안녕하세요"라고 말한 순간, 나는 이미 그의 입술이 내 귀에 붙어서 속삭이는 걸 들었다고.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는 그의 시선이 내 몸 위를 훑는 듯했다는 착각.
지하철 칸에서 벌어지지 않은 일
민재는 매일 7시 52분 3호선을 탄다. 앞치마를 두른 아줌마들 사이에서도 그는 눈에 띄었다. 흰 셔츠가 비둘기처럼 반짝였거든.
오늘도 민재는 나의 왼쪽에 섰다. 손잡이를 잡는 그의 손이 내 손끝과 3c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래, 지금 당장이라도
내가 그 손을 잡으면 어떨까
사람들은 그냥 흘러가고
우리만 여기 남는 거야
전동차가 흔들릴 때마다 민재의 어깨가 나의 어깨를 간질였다. 그때마다 나는 그의 턱 끝이 내 머리카락을 스치는 상상을 했다.
내가 돌아서면? 그가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보면?
하지만 민재는 여전히 고개를 숙고 있었다. 그가 내려야 하는 역은 다음이었다. 나는 계속 타고 있었다.
카페 화장실 거울 속 거짓말
"수진 씨, 커피 한 잔만 더 드릴까요?"
점장이 물었을 때, 나는 이미 화장실 거울 앞에서 그와 있었다.
그가 뒤에서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넘겨주면서
"여기 머리카락이 붙었어요"라고
실제로는 머리카락 같은 건 없었다. 나는 그냥 화장실에 갔다가 3분 동안 거울을 쳐다봤다.
수진, 너는 왜 이렇게까지 돼버린 거야?
왜 우리는 상상에 끌리는가
사람들은 상상이 안전하다고 말한다. 현실보다 덜 위험하다고. 거짓말이야.
상상은 더 위험해. 현실은 언젠가 끝나지만, 상상은 안 끝나거든. 너는 그와의 첫 키스를 수백 번도 더 경험했을지도 몰라.
작가들은 이런 걸 **'침묵적 친밀감'**이라고 부른다. 말 한마디 안 해도 벌써 둘만의 비밀을 가진 것처럼 느끼는 착각.
바로 그거야. 우리는 상대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침대에서 뒤엉켰다는 상상을 품는다. 그러면 우리는 갑자기 특별해진다.
그날 밤 붉어진 목덜미
"내일 봬요."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이미 그의 손끝이 내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걸 느꼈다.
그래, 내일이면
그가 내 손을 잡을지도 몰라
아니, 이미 잡고 있었던 거야
지금도 잡고 있어
나는 집에 와서도 그날 밤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내 몸을 타고 흐르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의 손끝을 느꼈다.
너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미쳐본 적 있어?
아무도 모르게, 하루 종일 누군가와 밖으로는 안 드러낸 채 혼자만의 친밀을 쌓아올리는 거.
그리고는, 그 상상이 언젠가 현실이 될 때도
그 상상보다 더 뜨거운 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