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갔다올게, 늦을 수도 있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방 안이 숨죽였다. 지하철 카드 두 장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한 장은 그녀가 들고 나갔고, 다른 한 장은 그냥 두고 갔다. 왜 두 장이나 들고 나갔을까. 누구와 만나는 걸까.
김이 서린 유리창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흩날린다. 이불 속에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머리카락 한 올이 이불 위에 떨어져 있다. 내 머리카락이 아니다.
이 불안의 뿌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혼자 남겨질 때마다 떠오르는 상상들은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의 정반대다.'
우리가 상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늘 같은 패턴을 따른다. 연인이 누군가와 몰래 만난다.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내가 모르는 포즈로. 그리고 나를 향해 짓는 미소는 그날따라 더 달콤하다.
키친타월 위에 놓인 커피잔. 입술 자국이 선명하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마신 걸까, 아니면 나를 의식해서 일부러 그대로 놔둔 걸까. 컵을 들어 올려 향을 맡아본다. 낯선 향수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이 상상의 끝에는 항상 나 자신이 있다. 뒷좌석에 숨어서 둘을 지켜보는 나. 아니면 몰래 메시지를 확인하는 나. 숨기는 것보다 들키는 게 더 흥분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수진의 이야기: 그녀가 찾은 차 안의 귀걸이
"오늘도 혼자야."
수진은 남자친구 민수의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시거잭에 꽂혀 있는 USB를 빼내려던 순간이었다. 손이 민첩하게 센터콘솔 박스 안을 더듬는다. 그녀의 손끝이 뭔가를 만졌다. 귀걸이 한 쪽. 은색, 작고 둥근 모양. 민수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수진은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 놓았다. 뜨거워질 것 같던 금속이 차가웠다. 내 것이 아니야.
그날 밤 수진은 민수가 일하는 지하 주차장에 갔다. CCTV 사각지대를 눈에 익혔다. 아침 7시, 민수의 차가 들어온다. 여자 한 명이 내린다. 수진도 아는 얼굴이다. 동네 카페에서 본 적 있다. 여자는 뒷자리에 떨어져 있는 귀걸이를 줍는다. 민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웃는다.
수진은 그 광경을 지하철 기둥 뒤에서 지켜본다. 숨죽이고 있던 내가 더 떨렸다.
상현의 밤: 메시지 17개를 읽고 난 뒤
"이따가 영화 볼래?"
상현은 여자친구 예린에게서 온 메시지를 읽고 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예린의 메시지가 아니다. 그녀의 스마트폰에 새로 생긴 위젯을 보고 있다. '친구찾기' 앱. 켜져 있다.
상현은 예린이 잠든 사이 조용히 그녀의 핸드폰을 들어 올린다. 잠금 해제는 생일이다. 1023. 메시지 17개. 대부분은 그와 나눈 것이다. 그러나 한 명에게 온 메시지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도 고마워'. 보낸 사람: '준호형'. 시간은 새벽 2시 17분.
상현은 그날 밤 잠이 들지 못했다. 그녀가 자는 동안 그는 혼자 거실에 앉아 인터넷을 뒤졌다. 준호형의 인스타그램. 남자는 어젯밤 클럽 사진을 올렸다. 예린은 거기에 없다. 아니면 태그 안 됐을 수도 있다.
그는 예린이 자고 있는 동안 그녀의 차키를 들고 나갔다. 차 안에 남겨진 가방을 뒤져본다. 화장품, 지갑, 그리고 작은 메모지 한 장. '오늘도 즐거웠어'. 필체가 남자다.
왜 우리는 이 끔찍한 상상 속에 뛰어드는가
이 끔찍한 상상은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의 정반대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내부의 가장 깊은 욕망을 드러낸다. 상대방이 나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흥분시킨다.
이 불안은 눈먼 곳을 벗겨내는 드러남의 욕망이다. 혼자 남아 상대방의 물건을 만질 때, 우리는 그들의 비밀을 갖고 싶어한다. 우리는 그들의 진실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확인하고 싶다.
이 환영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만 동시에 우리를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한다. 혼자 있을 때 떠오르는 이 끔찍한 상상들은 사실 우리가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서로를 속이면서도 서로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당신도 혼자 있을 때마다 상대방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건가요?
그녀가 문을 닫고 나간 뒤, 당신은 혼자 그녀의 가방을 들여다보고 있는가요?
아니면 당신은 그녀가 문을 닫는 소리가 나자마자, 그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