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이 멈춘 0.5초
- 아버지, 오늘 할 말 있어요.
- 뭐긴 뭐가 있어, 밥이나 먹어.
국그릇 위로 피어오르는 김을, 아버지는 바람으로 쫓지 않았다. 엄마는 반찬을 옮기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내 눈치를 슬며슬 훔쳤다. 식탁이 축 처지는 소리를, 나는 온몸으로 들었다.
딱 다섯 글자면 족해. 나는 지금, 49세 남자의 몸 냄새를 품고 이 식탁에 앉아 있다는 것만.
그날 저녁 나는 말했다. 손에 든 공깃밥이 체온만큼 뜨거워서, 손바닥이 눌려도 아프지 않았다.
우리가 침대에서 쥐던 검은 권력
그는 나보다 스물넷 많았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던 해, 그는 이미 대기업 신입사원이었다. 난 그 차이를 질척이는 열등감으로 삼켰다가, 밤마다 반으로 쪼개졌다.
- 그가 쓰던 노트북, 내가 바꿔치기한 키보드.
- 그가 뽑던 시가, 내가 몰래 맡던 담배 냄새.
모든 물건이 주인에게 돌아가야 하는 법칙. 그런데 침대 위에서만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올라타면 그는 누워야 했고, 내가 물면 그는 상처를 내야 했다. 나이가 아닌, 누가 누구를 먼저 움직이느냐로만 세계가 뒤집혔다.
아버지, 당신이 평생 지켜온 질서가 여기서는 무력해.
민서는 31살, 그녀의 ‘선생님’은 55살
민서는 외국계 회사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 어느 토요일, 그녀는 아버지 생신잔치에 데려갈 ‘남자’를 고민하다 지갑 속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동네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그는, 민서가 17살 때 담임이었다.
- 아빠, 오늘은 선생님도 모셨어요.
- 선생님이 왜 나한테 인사를…
말이 끊긴 순간, 민서의 아버지는 국화꽃무늬 셔츠가 주름 잡히는 걸 느꼈다. 옆집 아주머니가 “우와, 진짜 스승의 은혜도 이따위로 갚나?”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마치 광장의 메아리처럼 퍼졌다.
민서는 뒤늦게 알았다. 식탁 위에서 자신이 연상의 몸을 빌렸다고 고백하는 순간, 부모는 더 이상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한때 자기를 지켜줬던 감옥의 해결사로 돌아와 있었다.
아버지의 격노가 아니라, 부러움이었다
왜 우리는 집 앞마저도 넘보는 금기의 관계를 꿈꾸는가?
그건 단순한 반항이 아니다. 아버지의 첫사랑 나이, 어머니의 첫키스 나이를 역전시키는 일. 그들이 맛보지 못한 성적 자유를, 우리가 몸으로 증명하는 순간. 식탁 위의 부모는 더 이상 권위자가 아니라, 한때 뜨거웠을지도 모를 자신들의 그림자로 굳는다.
- 민서가 말하길, 선생님과의 침대 위에서 처음으로 ‘선생’이 아닌 ‘선생님’이라 불렀다고.
- 그 호칭 하나에, 스물한 해 동안 그녀를 움켜쥐던 두려움이 녹았다.
나도 그랬다. 내가 스물다섯, 그가 마흔아홉. 내가 “오빠” 혹은 “선배”가 아닌, 그냥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하경, 그 두 음절이 내 입 안에서 녹아내릴 때, 나는 비로소 스스로의 몸을 허가했다.
당신은 어떤 죄를, 어떤 식탁에서 고백할 것인가
가족은 원래 우리의 첫 번째 교도소다. 체육복도, 속옷도, 첫키스도 모두 허락받아야 하는 곳.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서 도망쳐, 더 크고 늙은 몸을 찾는다. 스물넷 많은 그의 흰턱수염을, 스물하나 많은 그녀의 가슴 주름을.
그리고 하루는 되돌아와, 가장 익숙한 밥상 위에서 그걸 털어놓는다.
부모 앞에서 고백한다는 건, 결국 나 자신 앞에서 고백하는 일이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국을 한 모금 떠먹고 말했다. “맛이 싱거운가.” 엄마는 대답했다. “그래도, 먹어야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 싱거움이 나의 욕망이었는지, 그들의 두려움인지.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아직도, 첫 번째 교도소의 쇠창살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