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45세 준수, 모텔 침대마다 남겨진 차가운 자국

데이트 앱으로 불러낸 몸들은 뜨거웠지만, 스치고 나면 차가운 자국만 남는다. 45세 준수가 밤마다 확인하는 고독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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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 준수, 모텔 침대마다 남겨진 차가운 자국

0시 12분, 침대 끝에 선 스마트폰이 흔들렸다

화장실 문 아래로 새어 나오는 형광등 불빛 하나만 남겨둔 채, 준수는 침대 끝에 앉았다. 아내는 시댁 근처 원룸으로 나간 지 3년, 아들은 기숙사. 45평 아파트에선 뉴스 앵커의 목소리만이 쓸쓸히 메아리쳤다.

손가락이 먼저 뇌를 앞질렀다. 고개 숙인 채 스와이프하는 동작은 반사신경처럼 굳어 있었다.

화면 속 여자는 향수 브랜드 PR이라고 적었다. 34세, 이혜정, 1년 전 독신. 와인잔을 든 손이 역광에 붉게 물들었다. 준수는 엄지로 살짝 밀었다. 하트가 흔들렸다가 사라졌다.

"매치되었습니다."

진동이 울리자, 그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거울에 비친 머리카락이 아침 미용실에서 깎은 지 6시간 만에 벌써 뭉개져 있었다.


오후 2시 14분, 모텔 키 카드가 슬립 한 장 위에 떨어졌다

예약 문자에 적힌 방번호 308. 문 손잡이를 돌리자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불타는 드라이클리닝과 가죽 냄새, 그리고 음습한 젖비린내. 38세 혜진은 이미 침대 옆 테이블에 지갑을 올려놓고 있었다.

"오늘은 정말 미안해요. 남편이 저녁 6시 비행기라…"

준수는 대꾸 대신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털끝에서 풍기는 향수는 아내가 즐겨 쓰던 것과 동일한 계열이었다. 똑같은 플로랄 머스크가 코를 간질이자, 아래쪽이 단번에 반응했다.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의 브래지어 후크가 풀리는 소리가 유일한 배경음이 되었다. 철제 프레임이 삐걱이는 순간, 혜진의 숨소리가 뜨거운 김으로 벽에 닿았다.

침대는 연초록 시트 위에 붉은 입자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누군가의 립스틱인지, 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준수는 그녀를 뒤집어 엎고, 서로의 옷이 아닌 살결만을 찾아 헤맸다. 12분 만에 끝났다. 혜진은 재빨리 린넨 셔츠를 뒤집어쓰고 화장대로 갔다. 거울 속 눈가가 붉게 충혈돼 있었다.


41세 윤아, 그녀가 처음 내민 건 이혼소송 서류 40장이었다

다음 주, 압구정 모텔 502호. 윤아는 만나자마자 준수의 왼손을 잡아챘다.

"반지 자국 있네요."

준수는 뒷정갱이 식은땀으로 젖었다. 윤아는 웃으며 가방에서 서류 한 묶음을 꺼냈다. 남편의 잠수이탈과 3년 만의 귀환, 그리고 재산 분할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빼곡했다.

"저도 당신처럼 거짓말의 반지 자국을 품고 살았어요."

그녀는 침대 시트 위에 서류를 펼쳐놓고 그 위에 몸을 누였다. A4용지가 서걱이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허리가 휘어졌다. 준수는 서류 위에서 그녀와 섞였다. 잉크 냄새와 향수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27분. 끝나자 윤아는 서류를 접어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녀의 손끝에 남은 잉크 자국이 침대 시트에 번졌다.


27세 지수, 그녀의 질문은 너무 맑았다

강남 모텔 201호. 지수는 캠퍼스 가까운 모텔에서 만났다. 아직은 학생이라며,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일주일이라 했다.

"오빠는 뭘 원하세요?"

준수는 말이 없었다. 20대 때 아내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들었다. 그때는 ‘사랑’이라고 답했다. 지금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는 지수의 허리를 품에 안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냄새나는 샴푸 향이 아닌, 실험실 냄새였다. 9분 만에 끝났다. 지수는 휴대폰으로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오늘 실험 있어서…"


3시 47분, 마지막 매치는 33세 마케팅 과장이었다

프로필 사진 속 그녀는 어린 딸과 함께 있었다. 문자를 보내자, 10분 만에 답장이 왔다. ‘망설여지지만, 궁금해요.’

모텔 401호. 문을 열자 키즈카페 냄새가 묻어나는 손에 손난로를 쥐고 있었다.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의 브래지어 후크가 풀리는 소리가 유일한 배경음이 되었다. 준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의 몸을 탐닉하면서도, 서로의 고독은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

17분. 끝나자 그녀는 재빨리 옷을 입고, 키즈카페에서 찍은 딸 사진을 내보였다. 사진 속 아이는 눈이 맑았다. 준수는 그 아이의 눈 속에서 8년 전 아들을 떠올렸다. 그때도 그 눈빛이 있었다. 이제는 없었다.


새벽 4시 12분, 준수는 앱을 내렸다

침대 옆 서랍에서 오래된 USB를 꺼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가족이 찍은 영상이 있었다. 아내는 눈이 붉었고, 준수는 어색한 표정으로 아들을 안고 있었다. 화면 속 8년 전의 준수는 왜 그렇게 행복해 보였을까. 지금의 준수는 그때의 자신을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그는 USB를 다시 서랍에 넣고, 창밖을 바라봤다. 아직 어둑한 새벽. 어딘가에선 누군가가 뜨거운 몸을 찾아 스와이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뜨거움 끝에 차가운 자국만 남긴 채 나올 것이다.

준수는 이불을 끌어올려 복부를 덮었다. 그의 체온은 여전히 36.5도였지만, 만져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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