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맞아. 유방암 3기."
병원 복도, 형광등이 시린 눈앞에서 깜빡였다. 진단서를 움켜쥔 손이 떨렸다. 옆에 있던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은 이랬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폰 꺼짐. 3년간 매일 같이 울고 웃던 남자는, 그 차디찬 등만 남기고 사라졌다.
등 돌린 순간의 무게
그는 화장실 가는 길에 문을 밀치고 뛰쳐나왔을까. 아니면 복도 끝까지 걸어가다가, 발걸음이 무거워져서 그만 두었을까.
문제는 등이다. 등은 거짓말을 못 한다. 이별할 때 사람은 얼굴을 마주치지 못한다. 마주치면 뭉개질 테니까. 그래서 등을 돌린다. 등으로 말한다. "널 버린다"고.
흥미로운 건, 그 등마저도 떨린다는 거다. 차가운 척해도 등은 차지 못한다. 어색하게 굳은 어깨,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 그래서 우리는 그 등을 보면서도 아직 뭔가 남았다고 착각한다. 설마 아직 사랑하나. 떨리는 건 미련이니까.
버림받는 기쁨
"나는 아프니까 버림받았다. 그럼 내가 건강했다면?"
병원 벤치에서 스며나오는 내면의 소리. 이상하지 않은가. 버림받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잘못은 내가 아프기 때문이었다' 라는 안도감이다.
버림받는 고통에는 기묘한 쾌감이 섞인다. 너무 아파서 버림받은 거라면, 내 탓은 아니니까. 나는 희생자다. 나는 순수하다. 이 고리타분한 자기연민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안도한다.
친구 수진은 말했다. "암 걸린 건 그렇게 슬픈 일 아니었어. 그놈이 싫증낸 핑계일 뿐이지. 그러니까 너는 병이 아니라, 그놈이 싫증난 게 더 서럽다는 거지."
민재와 지영의 827일
"민재는 827일째 나를 버리지 못하고 있어."
지영(32)은 2년 전 유방암 2기 판정을 받았다. 그날도 병원 복도. 민재는 화장실 갔다가 10분 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이랬다.
나 오늘 회사 일정 있어서
미리 차 빼놨거든
너 혼자 택시 타고 가도 돼?
그날 이후 민재는 매일 지영 집 앞에 왔다. 점심 도시락도 싸왔다. 하지만 지영은 민재의 손길이 차가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말이야, 내 가슴을 보면 눈을 피해. 수술한 자국이 싫은 거야."
"그런데 이상해. 오히려 내가 민재를 더 사랑하게 된 건, 그가 내 병을 싫어하는 순간부터야. 내가 아픈 몸으로도 누군가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게, 뭔가 쾌감이었거든."
유리와 정우의 94일
유리(29)는 갑상선암이었다. 양성. 살 확률 98%. 그런데도 정우는 94일 만에 도망쳤다.
미안해. 나도 약한 사람이야.
네가 약해진 거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더는 못 견디겠어.
정우는 그 말을 하고 울었다. "나 때문에 네가 아픈 거야. 내가 널 지켜주지 못해서." 유리는 말했다. "그래서 넌 떠나는 거야? 나를 지켜주지 못해서, 그래서 나를 버리는 거야?"
버림받는 사람은 두 번 배신당한다. 한 번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때. 두 번은 '그 사람이 떠나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암은 단순한 병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죽을지도 모른다' 는 금기를 건넨다. 그 금기 앞에서 연인은 두 가지 선택을 한다.
- 끝까지 곁에 있겠다고 말하고, 결국 지쳐서 떠난다.
- 아예 시작부터 떠난다.
둘 다 끔찍하다. 하지만 우리는 2번을 더 끔찍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2번은 '우리를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버린다는 점에서, 더욱 무자비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취약함을 오히려 지배의 도구로 삼는다.' 약해진 연인은 더는 떠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 깊은 내면에서 — 연인이 약해지기를 바란다. 그래도 나는 떠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 환상은 금방 깨진다. 연인은 떠난다. 약해진 너를 버리며, 당신은 오히려 더 강해진다. 이제 나는 네가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걸 안다.
남겨진 자의 복수
"그래, 넌 떠났어. 하지만 기억해. 넌 내가 떠난 게 아니라, 내가 병든 몸을 버린 거야."
병원 천장을 한참 바라보던 나는 속삭였다. "그리고 너는 평생 그 등이 시릴 거야."
버림받은 사람은 복수를 꿈꾼다. 아닌 척해도 그렇다. "나도 잘 살 거야" 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래도 넌 평생 나 때문에 괴로워할 거야" 라고 기도한다.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버리는 순간, 그 버림받음이 그 사람을 지배할 거라고 믿는다. "니가 떠나서 내가 아픈 거야. 그러니까 네가 나 때문에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거야."
하지만 정말로 잔인한 건,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잘 산다는 거다. 우리는 그들의 차가운 등을 보면서도, 그 등이 결국 따뜻해질 거라는 걸 안다.
당신은 아프지도, 죽지도 않는데.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 등 돌린 것뿐인데. 그럼에도 당신은 왜 이렇게 갈기갈기 찢겨버린 것처럼 아픈가?
아니면, 당신은 정말로 이 아픔이 필요한 것일까? 누군가 떠나는 것만큼 뼈저린 사랑의 증거가 없는 까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