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부끄러운 얘긴데, 의사님만 믿고 말할게요.”
그가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소리 없는 비명이 침대 옆 LED 불빛 속에서 튀었다. 지퍼는 반쯤 내린 채, 발끝이 진료대를 간질이고 있었다. 나는 장갑을 끼며 이건 단순한 환자 가림막이 아니라, 서로의 욕망을 분리하는 유리창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눈빛이, 진료실 불빛보다 더 뜨거운 걸 재빨리 인식했다.
검은 모피 끈에 묶인 목걸이
‘여기서 털어버리면, 평생 그와 나 둘만 알게 될 텐데.’
그가 말했다. “아내는 결혼 뒤로 한 번도…” 그 뒤엔 감춰진 한숨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 한숨은 아내를 위한 게 아니었다. 연필을 든 내 손이 떨렸다. 차트에 ‘요통’이라고 적어놓고 싶었지만, 그가 진짜 아픈 곳은 허리가 아니었다. 나는 진찰용 침대 위에 떨어진, 새까만 모피 끈이 달린 작은 목걸이를 발견했다.
“의사님도… 그런 맛을 아시잖아요.”
맛. 그 단어가 혀끝에 착착 붙었다. 그건 요통이 아니라, 맛에 대한 고통이었다. 나는 끈을 들어 올리려다 말고,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검은 모피는 여전히 온기를 품고 있었다. 그가 누군가의 목에 이걸 두르도록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왜 그걸 진료실에 가져왔는가.
사례 1. 청진기 너머 들린 숨소리
나는 3년 전, 수련 때 은밀히 접했던 사례를 떠올렸다. 강남의 모피부과에서 만난 ‘민재’라는 남자. 그는 매주 수요일마다 진료실로 들어와, 자신의 정강이에 난 보라색 멍자국을 보여줬다. 그가 말했다.
“아내는 모르는 게 좋아요.
저도 어떻게 시작됐는지 기억 안 나요.
다만… 멍이 지는 순간이 너무 선명해요.”
그는 정강이에 원형의, 철사처럼 생긴 흉터가 잔뜩 박혀 있었다. 병명은 ‘타박상 반복’. 하지만 차트 뒤쪽에 내가 붙여놓은 메모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녀는 내게서 절대 아프지 않기를 바라지만, 나는 결국 아프게 만들어 버린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고급이었지만, 침실 뒤편 벽엔 못 박은 자국이 수십 개였다고 했다. 아내는 모르는 척했고, 민재는 몰래 그 자국을 만지작거렸다.
사례 2. 어깨 위로 흐르는 눈물 한 방울
두 번째 사례는 다르다. 7층 피부과에서 만난 ‘서연이’라는 여자. 그녀는 정기적인 레이저 시술을 받으러 왔다. 처음엔 안면홍조였다. 그러나 세 번째 방문 때, 그녀가 말했다.
“의사님, 여기… 사각거리는 게 있어요.”
그녀는 볼을 들어내고, 이마에 미묘하게 희미한 흉터를 보여줬다. 레이저로 지울 수 없는, 손톱 자국이었다. 흉터 주위로 피부가 울긋불긋했다. 그녀는 속삭였다.
“남편은 몰라요. 그가 전에 술김에 한 말이 계속 따라붙어요. ‘네가 모르는 동안에도, 널 찾아 헤맸어.’ 제가 어떻게 모르나요. 저도 그 사람 모르는 틈에 누굴 찾았으니까.”
그녀가 눈물 한 방울을 삼켰다. 진료실 조명 아래, 그 눈물은 마치 증거물처럼 빛났다. 나는 그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다. 닦아버리면, 그녀의 진짜 아픔도 지워질 테니까.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금기는 포도송이처럼 달콤하다. 금기를 지키면서, 우리는 그 금기에 몸을 기댄다. 이마에 손톱 자국 하나, 정강이에 철사 흔적 하나. 다들 작고 희미하다. 그러나 그 흔적들이 서로를 찾아낸다. 봉인된 손끝이 서로를 간지럽히며, *‘우리만의 비밀’*이라는 말을 속삭인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금기에 대한 욕망은 실제로 금기 그 자체가 아니라, ‘나만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환각을 낳는다고. 그 환각은 동시에 두 가지 욕망을 충족한다. 1) 나는 특별하다. 2) 나는 범죄자다. 특별함과 범죄의 경계가 맞닿는 곳, 그곳이 바로 진료실이다. 백색 가운은 우리 모두를 외과용 칼날처럼 날카롭게 분리시킨다.
목걸이를 다시 들어 올리며
나는 검은 모피 목걸이를 주머니 속으로 살며시 넣었다. 그가 눈치채지 못한 채. 문 닫는 소리가 유리창 뒤에서 울렸다. 나는 아직도 뜨거운 듯한 그 끈을 손에 쥐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입을 연다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입을 열었다간, 둘 다 무너진다. 나는 결국 목걸이를 서랍 깊숙이 넣었다. 그리고 새로운 차트를 꺼냈다. 그러나 머릿속 한쪽에선 여전히 불길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 비밀을 지켜야 할까, 아니면 나도 그의 욕망에 빠져들어야 할까.
당신이라면, 누군가의 비밀을 평생 묻어두고 살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이 당신의 욕망이 되어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