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이 차 안에서, 네 숨결이 내 목을 두르고 있어

여름밤, 에어컨 꺼진 차 안에서 민수는 재현의 손길이 스며든 자리에 남은 땀과 냄새, 그리고 사랑의 잔해를 차분히 건져 올린다.

여름밤차안사랑의 잔해숨결이 목을 두르다폐쇄된 공간끝나지 않은 대화
이 차 안에서, 네 숨결이 내 목을 두르고 있어

여름밤 2시 47분, 잠실대교 아래. 시동 꺼진 아반떼 안은 가마솥이었다. 너는 운전대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가죽이 땀에 젖어 미끌거렸다. 오른손 엄지에 아직도 그의 침이 말라붙어 있었다. 40분 전, 그가 그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빠는 순간부터 차 안 공기는 점점 독해졌다.

"떼어줘."

한 글자씩 씹어 뱉었다. 너는 손가락을 그의 입에서 빼면서도, 끝까지 그의 혀끝이 스친 감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손등에는 그의 침과 너의 땀이 섞여 반질거렸다.


에어컨이 꺼진 지 한 시간, 실내 온도는 38도를 넘겼다. 너는 조수석 창문을 한 칸 내렸다. 바깥 공기는 뜨거운 아스팔트 냄새였다. 그는 네가 한 달 전 선물한 체리향 디퓨저를 이마에 눌러대고 있었다. 향은 진작 죽어 있었다. 유리병 안에는 진한 붉은색이 가라앉아 있었지만,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디퓨저를 적셨다.

네 발끝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봉투가 있었다. 안에는 그가 어젯밤 찢어버린 콘돔 포장지, 네가 썼던 빨간 립스틱, 그의 전 남자친구가 뿌렸을 법한 남자 향수 시향지들이 들어 있었다. 봉투를 밟을 때마다 비닐이 비틀리며 딸깍거렸다.

"여기서 처음 한 거 기억나?"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4월의 그날도 비슷했다. 봄비가 올 듯 말 듯한 저녁, 잠실 주차장 맨 끝. CCTV 사각지대에 세워둔 차 안에서 그의 손가락이 네 머리를 뒤로 젖혔다. 너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 찰나에 느낀 공포는 지금도 온전했다.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가지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그 욕망에 기꺼이 몸을 던질지.


그가 몸을 기울였다. 운전대와 가슴 사이, 30센치가 채 남지 않은 공간. 그의 숨결이 네 귀에 닿았다. 뜨거웠다. 너는 그의 숨결에서 아침 먹은 김치찌개 냄새가 남아 있음을 알았다.

그는 네 목덜미에 입을 대었다. 살을 쪽쪽 빨았다. 너는 그의 침이 네 피부를 타고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왜 떨어?"

이번에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너는 답할 수 없었다. ‘왜 떨어’라는 말은 ‘왜 나를 버리냐’는 뜻이었지, 사랑이 끝난 이유를 묻는 건 아니었다.

너는 그의 손을 네 허벅지 위에 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네 반바지 안으로 들어왔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너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의 맥박이 네 손가락에 울렸다. 빨랐다. 너무 빨랐다.


네가 그의 차를 처음 탔을 때부터 알았다. 조수석 시트벨트를 매는 순간, 그의 손이 네 허벅지에 닿았다. 그 손길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너는 움찔했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동을 걸었다. 그날부터 너는 그의 차를 탈 때마다 숨을 죽였다. 그는 네 두려움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강하게,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차 안에서 너희는 서로의 인생을 탐색했다. 너는 그의 전 여자친구들 사진을 그의 폰에서 찾아내고, 그는 네 지갑에서 전 남자친구와의 사진을 찢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서로를 놓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공포가 곧 사랑이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 차 안은 점점 좁아졌다. 그의 손이 네 허리를 감쌌다. 네 등이 운전대에 밀착했다. 가죽이 땀에 젖어 삐그덕거렸다. 그의 무릎이 네 무릎 사이에 들어왔다. 너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그의 숨소리가 네 입안으로 들어왔다. 너는 그의 숨속에서 자신의 냄새를 맡았다. 아침에 먹은 김치찌개, 어젯밤 마신 맥주, 그리고 네 몸 냄새.

"나... 나가고 싶어."

네 목소리가 잘렸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네 입술을 잡아먹었다. 네 입술이 찢어졌다. 피가 났다. 너는 그의 혀 끝에서 자신의 피 맛을 느꼈다. 짭짤했다. 그의 손이 네 등을 타고 내려갔다. 네 티셔츠가 말려 올라갔다. 네 등에는 아직도 그가 지난주에 남긴 손톱 자국이 있었다. 붉은 흔적이 아물지 않았다.


차 안은 더 이상 차 안이 아니었다. 뜨거운 여름밤, 에어컨 꺼진 차는 너희의 관이 되었다. 너는 그의 몸 아래 깔려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네 눈동자를 뚫고 들어왔다. 너는 그의 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작고 초라한, 그리고 두려운.

그의 손이 네 목을 감쌌다. 살짝 압력이 들어왔다. 너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가 말했다.

"여기서 끝낼까?"

너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손에 힘이 실렸다. 네 눈앞이 흐려졌다. 하지만 너는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꼭 안았다. 더 가까이. 더 깊숙이. 너는 그의 귀에 속삭였다.

"끝내줘."


차 안은 우리만의 무덤이자 요람. 여기서 우리는 서로를 죽이면서도 살린다.

그리고 아직도, 네 숨결이 내 목을 두르고 있어.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