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대기실 문 앞, 다혁은 손목을 잡았다
“잠깐만.”
딸꾹짝 소리가 울렸다. 문이 닫히는 순간, 우리는 세상과 단절됐다. 예식장 복도 끝, 수화물 수납장 뒤편 2㎡ 남짓한 유리창고. 아래층 웨딩홀에서 흘러나오는 샌드위치 향이 기름지게 코를 간질렸다. 나는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다혁은 검은 슈트 안에 몸을 묶은 채, 넥타이 끝을 느슨하게 풀었다.
우리 사이엔 1cm의 공기층이 있었다. 그 틈새로 그녀의 숨결이 닿을 때마다 목덜미가 화끈거렸다. 손목이 닿는 순간, 나는 눈을 감았다. 초점이 흔들리는 순간만큼 선명한 욕망은 없다. 그녀의 엄지손가락이 내 손등 위로 살금살금 올라왔다. 피부가 맞닿는 1cm², 그곳에서 미끄러지는 습기가 전해졌다.
한때, 나는 남편의 처녀였다
우리는 대학 4학년, 빈 강의실에서 처음 맞닿았던 사이였다. 다혁은 학생회 선배, 나는 신입생 시절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책상 밑에 숨어 있던 아이. 그날도 그랬다. 그녀가 문을 잠그고 돌아섰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녀는 한 걸음 다가와, 내 뺨에 살짝 손을 얹었다. 입술이 스칠 듯 말듯. 그러나 그때, 나는 뒷걸음쳤다. 그날 이후, 나는 남자와 잠자리를 가졌다. 처녀막을 남겨야 한다는 말이 두려웠다. 처음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는,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잔혹한 계약.
예식장 유리창고, 다혁이 속삭였다
“이제 넌 끝까지 지킬 필요 없어.”
그녀가 내 손목을 침대 옆 테이블에 살짝 눌렀다. 흰 레이스 장갑이 투명해질 듯 얇았다. 숨이 막혔다. 이건 배신인가, 구원인가. 그녀의 손이 슬슬 미끄러져 내려왔다. 손등, 손가락 사이, 새하얀 손목 안쪽 정맥 위로. 그녀의 손톱 끝이 살짝 들러붙는 순간, 나는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비췄다. 그 안에는 내가 아닌, 내가 될 수 있는 여자가 서 있었다.
“신부는 남편 뒤로 세 발짝”, 연화는 속삭였다. 그녀는 아들을 낳고 100일 되던 날, 시어머니의 양말 뒤집기를 거부했다. 부엌 싱크대에서 손가락 끝으로 자신의 진동을 찾았다.
“신부는 미소 지어야 해”, 수진은 말했다. 그녀는 화장실에 숨어 눈화장을 번지게 하고, 남편의 손 대신 혼자 복도를 걸었다. 그날, 웨딩마치는 둘이 아닌 하나로 울렸다.
흰 드레스의 속살
다혁이 내 손목을 놓았다. 유리창고 문이 열리려는 찰나, 그녀가 한 마디 던졌다.
“넌 어젯밤 나의 손끝으로 처음 넘어섰어. 그리고 오늘, 넌 남편 앞에도 그 손끝을 숨길 수 없을 거야.”
나는 복도로 나섰다. 아래층 웨딩홀에서 웅성거리는 하객 소리가 유리창을 떨렸다. 나는 누구의 규칙도 더는 지키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너의 손끝으로 잠들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흰 드레스 아래로 숨겨진 손목의 붉은 자국 하나로 오늘 밤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