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살아있는 뼈 속까지 파고드는 결핍

섹스 없이도 뜨거워지는 관계,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끓어오르는 욕망들. 손등 위 8초의 온도, 0.7초의 문이 닫히는 순간,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결핍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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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문이 닫히는 0.7초

"오늘은 그냥 이만 잘게요."

그가 일어서자 바람이 몰려왔다. 문이 닫히는 데 걸린 시간은 0.7초.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이미 두 번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손이 내 어깨를 살짝 흔들었을 때, 온도가 찍혔다. 37.2도. 목 뒤로 퍼지는 열은 체온 그 이상이었다.

이건 섹스를 원하는 게 아니야. 그냥 더 가까이, 더 오래, 더 아프도록.


1. 유진의 수요일 수집

와인바 ‘모네’의 좌석마다 시계가 없다. 대신 유진의 시계는 남자들의 손등 위에 올라간다. 오늘도 누군가의 검지가 유진의 손등 위에 살포시 올려졌다. 2초, 3초, 4초... 그녀는 속으로 센다.

남자는 말했다. "눈이 예쁘네요." 유진은 미소 지었다. 그녀의 눈은 실제로 예쁜 게 아니라, 남자들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조금씩 예뻐지는 눈이었다. 두 번째 잔이 비워지자 남자는 물었다. "오늘은... 어때요?" "그냥, 오늘은 말이야." 유진은 대답했다. 그리고 남자가 떠난 뒤, 그녀는 손등 위에 남은 온도를 수집했다. 휴대폰 메모장에.

3월 15일, 김○○, 36도 8초

그녀는 집에 와서 손등 위에 유리잔을 올려둔다. 아직 36도를 유지하고 있을까. 잔이 식으면 그녀는 다시 메모장을 연다. 그리고 다음 수요일을 기다린다. 섹스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었다.


2. 시은의 엘리베이터, 30초

지하 3층에서 출발한 엘리베이터. 시은과 지훈은 단둘이다. 1층까지 30초. 지훈은 약혼자에게 문자를 보낸다. ‘도착하면 전화할게.’ 시은은 그의 왼손 엄지가 화면을 스크롤하는 모습을 본다. 그 손이 내 어깨를 흔들던 날이 언제였지.

‘삐’ 소리와 함께 1층. 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간다. 문이 닫히는 0.7초, 시은은 문 사이로 그의 향기를 한 모금 빨아들인다. 그리고 2층 혼자 올라가며 눈을 감는다.

그 사람은 모르겠지. 나는 그의 결혼식날도, 그의 아이의 탄생일도, 심지어 그가 늙어가는 모습도 다 떠올릴 거라는 걸.


3. 시은의 거울, 하나의 균열

사무실의 거울은 언제나 잔상을 남긴다. 시은은 그 앞에서 머릿결이 손에 전해지는 감촉을 확인한다. 지훈의 체온이 아직 남아있는지. 그녀는 지훈의 약혼자 이름을 모른 채 살았다. 대신 그녀는 지훈의 서류를 넘기는 손길을, 커피를 마시는 입술을, 퇴근길에 들어선 신발 끈을 모두 기억했다.

동료들이 물었다. "시은아, 너는 왜 그래?" "그냥, 같이 일하면서." 그녀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달랐다.

나는 그의 전부를 원하는 게 아니야. 그의 작은 터치, 그의 시선, 그의 숨결만으로도 충분해. 섹스는 없었어. 그래서 그를 잊지 못해.


4. 3월 20일, 시은의 일기

오늘 지훈이 결혼한다. 나는 초대받지 못했다. 대신 나는 회사 복도에서 그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본다. 그가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그의 체온이 사무실에 남은 마지막 잔여물을 확인한다.

그는 영원히 모르겠지. 나는 그의 손길이 내 살에 남긴 상처를 평생 어루만질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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