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워 지운 그의 번호가 다시 내 손끝에 살아 있다. 네 번째 차단 해제. "또 왜?"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나는 이미 메시지 창을 열고 있었다.
내가 보낸 건 이모티콘 하나였다. 그러나 그 작은 하트는 몇 달째 계속된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는 답장 않고, 나는 다시 차단했다. 그리고 47분 후 또 해제.
피가 나는 손끝
차단과 해제 사이, 우리는 정말 서로를 지우려 했을까. 아니면 지워지지 않길 바랐을까. 휴대폰 화면에 뜨는 '차단됨'이라는 문구는 사실 간접적인 애원이었다.
'이제 그만 봐주세요.' 라고 화면이 말하는 게 아니라, '제발 날 찾아와줘.' 라고 속삭이는 거야.
그 순간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가장 외로운 연애 행위를 하고 있었다. 차단은 끝이라는 말을 대신하지만, 그 말은 반대편에 있는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저 텅 빈 정적만이 흐를 뿐.
그녀는 왜 그를 다시 찾았을까
서현은 밤 11시 47분, 다시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열었다. '박준영'. 그의 프로필 사진은 여전히 6개월 전 서현이 찍어준 사진이었다. 그 남자는 프로필을 바꾸지 않았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서현은 숨이 턱 막혔다.
아직도 나를...
아니, 나의 사진을...
차단 해제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떨렸다. 서현은 지난 일주일 동안 이 남자를 차단했다가 해제했다가를 다섯 번 반복했다. 각각의 사이클은 점점 짧아졌다. 3일, 2일, 1일, 반나절, 3시간.
첫 차단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가 '그냥 친구들이랑 모임이야'라고 거짓말했을 때. 서현은 그 자리에서 직접 보았다. 그와 다른 여자가 너무 편안해 보였다. 차단하자마자 그녀는 화장실에서 울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서현은 일어나자마자 해제했다. '혹시 나를 찾았을지도 모르니까' 라는 변명을 떠올리며.
너는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라는 집착
우리가 차단을 반복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상처받기 싫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상처받는 것을 각성제로 삼는 중독이다.
'이번엔 정말 끝이야.' 그 문장이 내게 주는 설렘은, 아직도 나를 찾고 있다는 믿음이니까.
뇌과학적으로 보면, 이 불확실성은 도파민 분비를 극대화한다. '이번엔 달라질지도 몰라' 에 대한 미약한 희망이, 확실한 거절보다 훨씬 강렬한 집착을 만든다.
차단은 사실 '내가 너를 끊을 수 있다'는 힘의 과시다. 그러나 그 힘은 매번 무력화된다. 왜냐하면 나는 결국 다시 연결하고 싶어 하니까.
디지털 흔적의 포르노그래피
우리는 이제 남겨진 흔적들로 상대를 가지고 노는 시대에 산다.
차단은 되었지만, 과거 대화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서현은 그의 마지막 메시지를 200번 이상 읽었다. '미안,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라는 그 문장을.
그녀는 그 메시지를 확대해서 보기도 하고, 축소해서 보기도 했다. 스크린샷을 찍어서는 사진 앱에 숨겨두었다. 가끔은 그의 음성 메시지를 벗삼아 잠들기도 했다.
우리는 상대를 차단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디지털 유령을 품에 안고 있다.
그는 왜 나를 차단하지 않았을까
흥미로운 점은, 박준영은 서현을 아직 차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서현이 해제할 때마다 그의 프로필은 닫혀 있지 않았다. 이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의도된 것일까.
어쩌면 그 역시 같은 불확실성의 노예일지도 모른다.
'차단하면 정말 끝날지도 몰라'
그 두려움이 나를 살아 있게 해
마지막으로 남은 것
반복된 차단과 해제 끝에 서현은 깨달았다.
그녀가 원한 것은 사실 '부재'가 아니라 '지각된 부재'였다. 차단은 되었지만, 사실은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
이제 서현은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여전히 화면을 향해 있다.
정말로 끝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왜 우리는 차단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을까. 아니면, 우리는 사실상대에게 '그래도 나를 찾아줘' 라는 가장 애절한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