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가 나오기 직전, 와인잔이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검은 셔츠 단추 사이로 스며든 빛, 마치 달빛이 흘러내린 것처럼. 민재는 그 빛이 어디서 왔는지 알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수진은 알았다. 눈동자를 살짝 내려 민재를 확인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했다.
“레드 와인 한 잔 더 드릴까요?”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다.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3초의 잔상이 눈꺼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검은 유니폼은 수진의 몸을 조여 오면서도 동시에 드러낸다. 단추 하나가 풀린 틈새로 보이는 희고 얇은 살결. 민재는 그 부위가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다. 가쁜 듯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골. 수진이 접시를 내려놓으며 허리를 숙일 때마다 그 틈새가 벌어졌다 좁혀졌다.
민재는 노트북 화면을 살짝 기울인다. 검은 테두리 속 반사경에 수진의 다리가 잡힌다. 검은 스타킹이 피부를 조이는 부분, 무릎 뒤쪽 주름살까지. 민재는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손으로 잔을 만진다. 잔의 온도가 내려가면서 손끝이 시려온다.
수진이 다가올 때마다 민재는 고개를 숙인다. 숨결 닿을 듯 말 듯한 거리. 수진은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살짝 몸을 기울인다. 이마에 난 땀방울 하나가 굴러 떨어진다. 민재는 그 방울이 자신의 손등에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방울은 테이블 위에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한 번은 수진이 접시를 들다가 손을 헛디뎠다.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이는 순간, 민재는 수진의 숨결이 귓불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0.8초. 수진의 눈이 민재의 눈을 스쳤다. 이내 수진은 표정 없이 돌아섰다. 민재는 그날 밤, 0.8초의 온도만 남은 손가락으로 눈을 비볐다.
매주 수요일 7번 테이블은 민재의 자리가 되었다. 수진은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몸을 조금씩 더 숙였다. 민재는 그녀의 숨소리를 들었다. 짧고 가끔 끊기는 숨. 민재는 잔을 만지며 수진의 숨결을 따라 입술을 움직였다.
수진이 다가올 때마다 민재의 시선은 단추 틈새로 빨려 들어갔다. 흰 살결 위로 흐르는 땀방울, 가느다란 푸른 혈관. 민재는 그 혈관이 터질 것처럼 보였다. 수진은 민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레드 와인 한 잔 더 드릴까요?”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진이 몸을 숙이며 와인을 따르는 동안 민재는 그녀의 귓불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민재는 잔을 만지며 수진의 귓불을 떠올렸다. 붉어진 귓불, 떨리는 손끝. 그날 밤, 민재는 수진의 숨결이 닿았던 0.8초의 온도를 손등에 그려 넣었다.
다음 수요일, 민재는 다시 7번 테이블에 앉았다. 수진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와인잔을 들 때 몸을 더 숙였다. 민재는 수진의 숨소리를 들었다. 민재는 잔을 만지며 수진의 숨결을 따라 입술을 움직였다.
수진이 다시 다가왔다. 민재는 수진의 눈동자를 마주쳤다. 수진의 눈동자 속에 민재의 얼굴이 비쳤다. 민재는 수진의 눈동자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날 밤, 민재는 수진의 눈동자 속 자신을 떠올렸다. 수진의 눈동자 속 민재는 수진의 눈동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