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안 왔어"
아침 7시 42분. 욕실 거울 앞에서 손톱으로 결혼반지를 돌린다. 금속이 피부를 긁는 소리. 지난 밤, 그녀가 카톡으로 보낸 단 한 줄.
"아직도 그 자리야?"
나는 아내에게 아무 말 없이 출근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등을 본다. 3cm 길이의 희미한 상처. 10년 전, 그녀가 남긴 마지막 흔적.
뼈가 뜨거운 이유
사람들은 불륜을 갈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건 갈등이 아니라 관음이다. 아내와의 침대 위에서, 내 머릿속에선 그녀가 벌거벗은 채 춤을 춘다. 아내의 숨소리는 그녀의 신음으로 변주된다.
나는 결혼생활을 연기한다.
아내가 "밥 먹어" 하면 미소 짓는다. 아내가 "오늘도 늦어?" 하면 미안한 척한다. 그러나 침대 안에서 나는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떠올린다. 처음 만난 호텔 703호. 하얀 이불 위에서 그녀가 남긴 첫 말.
"남편이랑 이제 안 해. 너랑만 할래."
그 말이 10년 전이었다.
703호의 사진 한 장
2014년 3월 2일. 서울 역삼동의 한 모텔. 그녀는 담배를 피우며 침대 발치에 앉아 있었다. 이름은 수진. 32세. 나보다 세 살 많았다. 그녀의 남편은 내 상사였다.
"우리 둘 다 미친 거지?"
수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나에게서 셔츠를 벗겼다. 그때 내 왼손등에 긁힌 상처. 그녀의 손톱이 피부를 찌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는 3개월 만에 헤어졌다. 그녀는 회사를 그만뒀다. 나는 결혼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정우의 편지
작년 겨울, 우연히 받은 편지. 보낸이는 '정우'. 수진의 남편이었다.
"당신이랑 자다가 수진이랑 이혼했어요. 그 뒤로 수진은 당신 생각만 해요. 나도 당신이랑 잤어요. 수진이 안 오는 밤마다 당신 사진 보며..."
나는 편지를 찢었다. 그러나 그날 밤, 수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 마."
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너 아직 못 잊었어. 너도 그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내가 자고 있었다.
불륜은 왜 아름다운가
정우의 편지를 읽으며 깨달았다. 불륜은 끝나지 않는다. 그저 변주될 뿐이다. 수진과 나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10년째 서로를 지워내지 못했다.
우리는 결혼생활이 아니라, 불륜의 상처를 연기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의 변화를 눈치챘다.
"요즘 너 왜 그래?"
나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마지막 질문
오늘 아침, 결혼반지를 돌리며 생각했다. 10년째 계속되는 불륜, 결혼생활은 그저 연기였나. 아니. 우리는 연기를 넘어서, 자기 자신을 속이는 범죄자였다.
그렇다면 너는 어디까지가 진짜였나?
그 3cm의 흔적이 너의 진심이었나, 아니면 나의 연기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