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조울증 발작 속 던진 이별, 그는 아직도 나를 부른다

한밤중 조울증 발작 속 던진 차가운 이별, 3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내 이름을 부른다. 잔혹한 욕망과 연대의 끈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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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 지우고 있어"

밤 3시 47분. 나는 핸드폰을 바닥에 던져놓고 욕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 같았다. 심장은 너무 빨리 뛰어서 숨을 쉴 때마다 턱이 떨렸다. 차가운 타일이 내 발등에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재우가 창문을 두드렸다. 문 앞에 와 있을 거란 걸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연락을 끊었다. 왜냐고? 그날 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야, 우리 이제 끝이야. 내가 너 지금 지우고 있어. 너도 나 지워."

그 순간 눈이 풀려서,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재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척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3년. 그리고 지금도 그는 내 번호를 누른다. 나는 받지 않는다.


살아있는 유령

나는 왜 아직도 그를 죽이지 못했을까? 아니, 왜 그가 나를 살려놨을까?

이건 단순한 옛사랑이 아니다. 누군가를 조울증 발작 속에서 차버리는 건, 죄책감의 새로운 품종을 낳는다. 나는 그때 재우를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문 앞에 내려놨다. 아니,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그러나 재우는 내가 떠난 뒤에도 살아남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매일 되새긴다. 거울 속 내 눈이 아직도 그날 밤을 반사한다. 내가 그를 버린 순간, 나는 동시에 나 자신의 일부를 버렸다. 그 일부는 아직도 그의 손에 남아서, 나를 부른다.


수진의 이야기: 그녀는 사라졌지만

"그는 내가 그를 죽이려 했던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매일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거예요."

수진은 28살, 디자이너. 전 남친 민수와 헤어진 지 1년 4개월. 헤어진 방식이 좀 독특했다. 수진은 민수가 정신과 약을 먹지 않는 걸 참지 못했다. 민수는 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약을 먹으면 '자기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진은 그를 데리고 강물가로 갔다. 둘이서 밤에 앉아 있었다. 수진이 말했다. "야, 나 너 데려다줄까? 너 진짜 아픈 거 알아. 근데 나도 아파. 나도 미쳐가."

민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진은 물었다. "우리 끝내자?" 민수가 말했다. "그래."

그 후 민수는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수진에게 문자를 보낸다. "오늘도 살아있어. 운동하러 갈래?" 수진은 답장을 안 했다. 하지만 수진은 매일 아침 7시 25분에 눈을 떴다.


현우의 이야기: 그는 나를 버렸지만, 버림받지 않았다

"내가 그를 지켜줘야 했는데, 나는 도망쳤어요. 그래서 그가 계속 나를 부르는 게 아닐까?"

현우는 31살, 프로그래머. 전 남친 재석은 경계선 성격장애였다. 재석은 현우가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하겠다고 했을 때, 현우의 집에 찾아와서 창문을 깼다. 현우는 그날 밤 재석을 경찰에 넘겼다. 재석은 병원에 실려갔다.

현우는 그날 이후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6개월 뒤, 현우는 재석의 어머니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재석이 약을 먹고 있다. 재석이 현우를 매일 부른다. "현우 씨, 한 번만 들러주면 안 될까요? 아들이 너무 힘들어해요."

현우는 갔다. 재석은 말했다. "나 진짜 아팠어. 근데 네가 날 버려서, 나 살고 싶어졌어. 너한테 복수하려고."

현우는 그날 이후 재석을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현우는 재석의 번호를 지우지 못했다. 현우는 재석이 전화를 걸 때마다 받지 않으면서, 재석이 왜 그를 부르는지 알고 있었다. 재석은 현우가 떠난 자리에, 아직도 현우가 서 있다고 믿는다.


왜 우리는 버림받은 자의 목소리를 끊을 수 없을까

금기와 욕망은 언제나 함께 온다. 누군가를 조울증 발작 속에서 차버리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잔혹한 권력 행사다. 그 순간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소멸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 소멸은 완전하지 않다. 버림받은 자는 살아남는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버린 자의 죄책감을 소리 없이 증명한다.

이건 단순한 집착이 아니다. 이건 연대의 뒤틀린 형태다. 조울증을 앓는 연인은, 연인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들은 버린 자를 부른다. "나는 아직도 여기 있어. 너가 날 죽이지 못했어."

동시에 버린 자는, 자신이 떠난 자리에 아직도 서 있다는 것을 잊지 못한다. 그 자리는 비어 있지만, 아직도 그들의 체취가 남아 있다. 그래서 버린 자는 버림받은 자를 끊을 수 없다. 버림받은 자는 버린 자의 죄책감을 살아서 증명하는, 살아있는 유령이 되기 때문이다.


너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니?

당신도 누군가를 조울증 발작 속에서 차버렸나요? 아니면 당신도 누군가에게서 차였나요? 그리고 아직도 그 이름이 울려 퍼지나요? 언제까지 그 유령을 품에 안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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