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예배 끝, 향이 채 식기도 전에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탁 위 성경이 덮인 채 닫히는 소리, 마치 무거운 문이 스르르 닫히듯. 그는 말 없이 나를 뒤편 소창으로 이끌었다. 아직도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초불이 우리 발끝을 붉게 적신다. 그림자가 벽에 붙은 두 사람의 실루엣을 키운다.
‘나는 너를 떠나지 못한다’는 말이, 그날 처음 고백이 아닌 매듭처럼 느껴졌다. 나는 매 주일 똑같은 자리에 앉아 그의 설교를 듣는다. 말씀 한 구절이 떨어질 때마다 가슴이 덜컥거린다. 그는 ‘은혜’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때마다 숨결이 내 귓가로 닿는 듯하다. 나는 그 떨림을 두려움이라고 속이고, 감동이라고 기록했다.
그날도 역시 그는 말했다. “죄지은 자는 스스로 걸어갈 수 없어.” 그래서 그가 나를 붙들었다. 나는 그 말이 성경의 구절인지 그의 독백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첫 영찬 주일 ‘유민’이라는 이름의 여자는 찬양팀 통로 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담임목사 ‘준혁’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끝이 미묘하게 떨린다. 유민은 그 떨림을 느꼈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똑똑히 볼 수 없었다.
“네 눈물 하나하나가 기도가 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유민의 손을 잡고 교회 지하로 내려갔다. 봉인된 헌금 상자 사이, 어둡고 차가운 공기. 준혁은 유민의 머리카락에 남은 성찬 포도주 향을 맡으며 작게 속삭였다. “우리만의 기도다.”
그날 이후, 유민은 매주 밤 기도회가 끝나면 준혁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찬양팀 후배가 물었다. “언니, 매일 늦게까지 뭐 하세요?”
유민은 피곤한 얼굴로 웃으며 답했다.
“담임 목사님이 제 영적 어둠을 치유해 주신다고 하셨어요.”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온 말은, 복음의 약속처럼 또렷했다.
어느 엄마의 고해 아홉 살 아이가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엄마 ‘선영’은 교회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담임목사 ‘도형’은 선영에게 말했다.
“아이 꿈엔 엄마의 무거운 마음이 비친 거예요.”
선영은 반사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잘못된 건 누군가를 사랑한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지 못한 것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도형은 서랍에서 작은 십자가 목걸이를 꺼냈다. “이걸 아이 방문 손잡이에 걸어두세요. 그리고 나는 엄마의 기도를 받겠습니다.”
그날 밤, 선영은 아들이 잠든 뒤 목사 연구실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자 도형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놓은 차림으로 나왔다. 선영의 눈에 그는 부르심의 윤곽처럼 보였다.
“아이를 위한 희생이에요.”
선영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가슴팍에 십자가를 그었다. 차가운 손끝이 뜨거운 피부를 스친다. 그 순간 선영은 깨달았다. 이것이 기도인지 욕망인지, 나는 이미 분간할 수 없다.
십자가 아래서 예배당 천장 틈새로 새벽 햇살이 내려앉는다. 그는 여전히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나의 이마에 손가락 두 개를 얹는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그 차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의 손끝에서 뜨거움을 느낀다. 그 뜨거움이 ‘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에, 나는 이미 그 안에 녹아 있다.
그는 말했다. “너는 나 없이는 살 수 없어.” 나는 아직도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모른다. 다만, 그 말이 내 몸을 관통할 때마다 심장이 눈물로 번지는 것은 분명하다.
모두가 떠난 뒤, 예배당 한복판에 홀로 선다. 십자가는 여전히 높이 서 있다. 나는 그 아래로 걸어가 손을 뻗는다. 차가운 목재가 피부를 파고든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신앙이란
두려움과 욕망 사이를 오가는 끝없는 진자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는 나를 구원하러 온 게 아니라, 나를 구원할 수 없음을 보여주러 온 것인지도.
나는 고개를 들어 어둑한 천장을 바라본다. 아직도 향이 맴돈다. 그 향은 기도이자, 남은 욕망이자, 씻기지 않은 죄의 잔향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 서서 속삭인다.
“주여, 나를 사랑하는 이가 당신인지, 아니면 나를 지배하는 이가 당신인지, 오늘밤 분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