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눈물로 애원하던 밤, 나는 침대 시트를 꼭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나비 모양 자국보다 더 진하게.
새벽 세 시, 침실 문 앞.
그는 셔츠 단추 두 개를 풀어헤쳐 놓고 무릎을 꿇었다. 숨결이 내 발끝까지 닿았다. 눈물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탁’ 하는 소리가 살짝 들렸다. 나는 침대 끝에 앉아, 이불 속에 손을 넣어 시트를 구겼다.
“내가 왜…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 소리는 떨렸다. 나는 대답 대신 시트를 한 번 더 꼬았다. 솜이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내 발등에 눈물 한 방울 맺혔다. 차가워서, 뜨거웠다. 나는 발끝으로 그것을 톡톡 흔들었다. 떨어졌다. 그때 나는 말했다.
“너 때문이야. 단 하나, 너만의 선택이야.”
1. 욕실 스팀 속, 상현의 반박할 수 없는 고백
상현, 38세. 두 아이의 아빠. 결혼 5년 만에 그는 우리 욕실에서 울었다. 스팀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그의 숨소리가 흐려졌다.
- “난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부모님이 시켰잖아.”
지아는 샤워 부스 유리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방울이 그의 눈초리를 따라 흘렀다. 그녀는 욕실 문 손잡이를 꽉 잡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퇴사해. 나랑 이혼해. 아이들도 포기해.”
한 치 앞이 흐릿한 스틈, 상현은 침묵했다. 고개를 끄덕일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지아는 미러 위로 손을 대었다. 서리처럼 차가운 유리. 그녀는 손끝으로 하트를 그렸다가 곧바로 지웠다.
2. 현관 앞, 승준의 마지막 애원
승준, 34세. 동거인. 그는 은채의 짐을 막아섰다.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고, 복도 불이 번쩍였다. 그는 문짝을 두 손으로 눌렀다.
- “나는 원래 우울한 사람이야. 네가 나를 구해줘야 해.”
은채는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손잡이를 돌렸다. 그때 승준이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손가락이 블라우스 끝자락을 휘감았다. 따끔한 느낌이 올라왔다. 은채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래서?”
그녀는 몸을 틀었다. 열리는 문 틈으로 복도 풍경이 들어왔다. 승준은 그녀의 손등에 뺨을 비볐다. 눈물이 손등과 뺨 사이에 끼었다. 은채는 그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 냈다. 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림자 속 긴장의 온도
불행은 가장 안전한 정체성이다.
- 책임의 전가 — “난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면, 상대는 반박할 수 없다. 오히려 안도한다.
- 변화의 두려움 — 행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뜨겁다. 불행은 시원할 만큼 익숙하다. 불타는 천국보다 얼어 붙은 지옥이 편하다.
- 무한한 사랑의 시험 — ‘나를 이렇게까지 아픈 사람이라도 사랑해 줄 수 있겠니?’ 그 질문은 끝없이 반복된다.
심리학자는 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부른다. 자발적 무기력증. 고른 불행, 돌려받은 눈물.
새벽 네 시, 침실.
주원은 아직도 바닥에 있다. 그는 시트 끝을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나는 그의 머리 위로 내려다본다. 눈물이 그의 턱에 맺혀 있다.
“지금도 네 불행이 네 탓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흔들지도 못한다. 눈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시트를 놓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넘긴다. 한 번, 두 번. 차가운 머리끝이 손가락을 간질인다.
그는 그대로 잠이 든다. 아니, 그만 두려고 잠이 든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의 눈물 앞에 서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눈물이 ‘고른 불행’이라는 사실, 속으로만 알고 있지 않은가.
침대 시트를 꼭 움켜쥔 손끝이 아직도 떨리는가. 또는 그 눈물을 끝내 훔쳐 줄까,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