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가 나를 원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침대 끝에 발을 떨궜다

욕망 앞에서 몸이 기억하는 냄새·온도·맛 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두려움은 떨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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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원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침대 끝에 발을 떨궜다

“자기, 오늘은 그냥… 같이만 있고 싶어.”

그가 말했다. 문득.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양말 벗은 발을 침대 끝에 살짝 떨궜다.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잔이 손끝보다 훨씬 차다. 그 찬 기운이 손등을 타고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동안, 나는 이미 땀을 흘렸다. 눈앞의 이 남자는 어젯밤까지 내 목덜미를 핥으며 ‘지금 당장이라도 먹고 싶다’고 속삭였다. 그 같은 입술이 오늘은 달랐다. 부드럽지만, 끝을 알 수 없는 부드러움.

욕망이 가장 거칠 때, 우리는 왜 몸을 가장 날카롭게 움츠러드는가.


1. 여행 숙소의 검은 매트리스

봄이었거나 가을이었거나, 기억은 계절보다 색에 가깝다. 어두운 보라빛 방 한복판에 놓인 검은 매트리스만이 또렷하다. 그날도 그는 키스하려 머리를 숙였다. 촉촉한 입술이 닿기 직전, 나는 문득 숨을 멈췄다. 공기에서 풍겨오던 파슬리와 오렌지껍질 향이 겹쳐져, *‘이 냄새를 평생 기억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번쩍였다.

손끝이 닿는 그의 피부는 뜨거웠지만, 나는 오히려 차가워졌다. 뜨거움이 얼마나 빠르게 굳을 수 있는지를, 이미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매트리스는 푹신했지만, 그 푹신함이 곧 광활한 진흙으로 변할 것만 같았다. 발가락을 움찔거릴 때마다, 검은 천이 발등을 살짝 간질였다. 그 느낌이 두려웠다. ‘여기서 한 발만 더 들어가면, 돌아올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2. 민재, 그리고 한겨울의 금속 맛

지난 겨울, 민재는 유리창 너머 네온사인처럼 희미하게 빛났다. 첫 키스는 춥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저 혀끝에 남은, 차가운 금속 맛만이 있었다. 키스가 끝나자 그는 말했다.

“너, 나랑 잘 안 맞을 것 같아.”

문장은 칼날처럼 짧았다. 나는 침대 옆에서 30분 동안 서 있었다. 발바닥이 차가운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냉기를 느꼈다. ‘이 냉기를 영원히 간직할 수만 있다면.’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욕망이 맞닿는 순간, 끝이라는 확신이 먼저 찾아온다는 것을.


3. 수진,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닫히는 소리

수진은 두 달 동안 모르는 남자의 숨소리만 들었다. 블라인드였던 그는 전화 너머로 그녀의 숨을 빌렸다. 만난 날, 호텔 엘리베이터가 7층을 향해 올라가는 동안 수진은 키를 꽂는 작은 ‘찍’ 소리에 벌벌 떨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그녀는 웃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사실 나는 그 사람의 목소리만 좋았어. 진짜 몸은… 불안했거든.”

수진은 지갑 속 지하철 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카드 위의 흰색 실리콘 케이스가 세균처럼 물들어 있었다. 그 색이 그녀의 두려움을 대신했다. ‘목소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잊을 수 있다면.’


4. 심리학은 그 두려움을 ‘친밀 공포’라 부른다

‘상대가 허공에 던진 “난 네가 좋아”라는 말은, 이미 내 귀에선 “너는 어떠냐?”로 변주된다.’

그 압박은 감정의 굴레다. 보통의 연애는 ‘줄까 말까’가 아니라 ‘받고 싶은 마음’과 ‘잃을까 두려운 마음’ 사이에 끼인 숨통이다. 그래서 우린 침대 끝에 걸터앉아, 서로의 눈치를 떠본다. 아직은.


5. 15센티 공백, 두려움의 온도

그날 밤,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스마트폰 화면이 얼굴을 푸르게 비췄다. 발끝이 스치는 게 전부였지만, 그게 전부였기에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와 나 사이 15센티, 그 공백은 두려움의 온도였다. 차가운 듯 뜨거운, 뜨거운 듯 차가운 언저리.

‘차라리 이 떨림을 영원히 가지고 있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침대 끝에 발을 올려놓은 채, 말없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에게 닿지도, 멀어지지도 않은 그 15센티를 조심스럽게 가늠했다. 떨림이 사라지는 순간, 모든 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침대 한복판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발끝만 살짝 건채, 두려움을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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