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휴대폰을 끄고 이마를 내 어깨에 살짝 기댔을 때, 나는 이미 투표를 끝냈음을 알았다. 유리창 반사에 비친 우리는 두 개의 섬처럼 떠 있었다. 그가 먼저 말했다.
"오늘 네가 찍은 사람 때문에 이 나라가 망한다더라."
나는 대답 대신 손등으로 그의 턱을 살폈다. 가시 돋친 말들이 침대를 뒤덮기 전에, 입을 막아야 했다.
그날 밤 우리는 피켓 대신 침대를 들었다.
1. 세진, 도현 ― 3월 11일, 새벽 2시 48분
베개 한쪽이 깊게 찢긴 건, 그가 내 SNS 알림을 훔쳐본 뒤였다. 나는 그가 좋아하지 않는 코미디 클립에 ‘ㅋㅋ’ 하나 달았다. 댓글창은 그의 말투 그대로였다.
“빨갱이 새끼들”
그가 손에 든 칼날은 아주 작았다. 솜이 터져 나올 때, 그는 한 움큼을 입에 넣었다. 말이 아니라 숨이 먼저 흘러나왔다.
"이 맛이 너야."
나는 대답 대신 솜을 털어냈다. 솜은 우리 머리카락에 붙어 밤새 눈처럼 쌓였다. 그가 내 허리를 붙잡을 때, 찢어진 쪽면이 우리 사이에 껴 들었다.
새벽이 되어 두꺼운 이불 아래, 우리는 서로의 이름 대신 정치인의 별명을 속삭였다. 그 별명이 서로에게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 확인하듯 입술을 움직였다.
2. 민서, 혜진 ― 12월 19일, 오후 6시 12분
집회장은 눈발이었다. 혜진이 든 피켓은 나를 향해 있었다.
페미 = 빨갱이
나는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너도 여잔데!" 불꽃이 튕겼다. 그녀는 피켓을 내려놓고 내게로 왔다. 눈발 사이로 우리의 첫 키스가 떨어졌다.
1년 넘게 함께 살면서도 우리는 그 피켓을 벽에 걸었다. 그녀는 내 정치인 얼굴을 그리고, 나는 그녀 정치인 얼굴을 지웠다. 얼굴이 사라질수록 우리는 서로를 더 선명하게 새겼다.
어느 날, 그녀의 뺨에 내 침이 튕겼다. 나는 그걸 닦지 않았다. 그녀도 나의 목덜미에 침을 뱉었다. 우리는 서로의 침으로 서로를 씻었다. 그러나 말은 점점 메말랐다.
3. 나 ― 어젯배, 4시 27분
나는 꿈에서 그가 나를 떠나는 장면을 봤다. 그러나 현실에선 그가 내 등을 더 세게 눌렀다. 꿈과 현실 사이, 우리는 서로의 진영을 옮겨다니며 숨었다.
"네가 없는 편에 서면, 나는 누구와 잠들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머리카락을 한 줌 움켜쥐었다. 그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픈 만큼 선명해졌다. 나는 그가 누구를 찍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가 나를 안는 힘에서, 이미 찬반이 느껴졌다.
4. 우리 ― 아직 끝나지 않은 밤
우리는 몸으로만 말했다. 말은 늘 정치를 끌어들였다. 키스할 때조차 우리는 서로의 후보자 이름을 입 안에 숨겼다. 그 이름이 부딪히면, 살짝만 더 깊게 들어가려 했다.
금기는 욕망의 문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금기로 만들어, 그 안에 숨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우리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뜨거운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장면 ― 아침 7시 09분
새벽 투표 끝에 발표된 개표율은 100%였다. 우리는 서로를 찍었다. 그러나 결과는 누구도 이긴 사람이 없었다.
그가 일어나 넥타이를 맬 때, 나는 그의 목에 입을 맞췄다. 넥타이 매듭 아래로, 우리의 진영이 겹쳐 있었다.
"오늘도 투표장에 가야지."
그가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의 넥타이를 더 세게 당겼다. 우리는 서로의 몸에서 투표용지를 찾았다. 그러나 그곳엔 이름 대신 이미 찢긴 솜과 굳은 침 자국만 남았다.
침대 위에서 우린 끝내 투표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영원히 함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