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불 꺼진 뒤, 어둠 속에선 여전히 뜨거운 숨결이 떠돌았다. 수진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풍겨온 것은 우리 침대보다는 남의 차림에서 맡았을 법한 비누향이었다. 진. 그 이름이 목끝에서 얼얼하게 끓었다. 그는 신입. 어깨가 뜨거운, 땀 냄새 젖은 체온을 가진 아이.
문이 닫히고 남은 의자 위 검은 가디건. 소매 안쪽에선 수진의 겨드랑이가 비벼졌을 겨드랑이 냄새가 아련했다. 그 냄새는 이제 동시에 진의 손끝 냄새였다. 나는 가디건을 들어 코에 갖다 댔다. 거기 있었겠지. 수진의 살결, 진의 체온이 섞인 그 지점.
밤버스 안, 그의 머리카락이 수진의 어깨에 닿았다. 한 올, 두 올, 눈꺼풀 위로 번들거리는 정수리 땀방울. 나는 뒷자리에서 지켜봤다. 수진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고, 진의 머리는 그 틈으로 스며들었다. 살결 사이로 들어가는 냄새처럼.
집에 와서 수진의 겨드랑이를 만졌다. 끈적이는 듯하지만 말라붙은 땀. 손끝에 닿는 순간, 버스 안의 더운 공기가 재현됐다. 여기에 누가 숨을 쉬었을까. 나는 혀를 내밀어 스쳤다. 짠맛이었다. 짠맛 속에 다른 짠맛이 겹쳐 있었다.
회식장, 탁자 아래. 수진과 진의 무릎이 스쳤다. 아니, 스친 척했다. 스치는 0.3초, 살결 두께만큼의 온도가 서로를 물들였다. 나는 맥주 잔을 들고 있었다. 거품이 터지며 흘러내린 액체가 손등을 타고 팔뚝으로 흘렀다. 차가운 맥주가 아닌, 뜨거운 땀처럼.
수진이 내게 와서 말했다. "오늘 진이랑 떡볶이 먹었어. 너랑 자주 가는 그집." 숨이 멎었다. 그 떡볶이집은 우리가 연애 초반 매주 토요일마다 들렀던 곳. 소스 맛이 바뀌었다고 불평했던 그날, 수진은 진과 처음 웃었을 것이다. 그 미소가 겨드랑이에 닿았을 때, 그 냄새가 섞였을 때.
이후 이틀, 나는 수진의 겨드랑이를 더 깊이 맡았다. 아침마다 샤워를 마친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비누향은 있었지만, 그 아래 냄새가 있었다. 땀과, 그 땀을 마신 누군가의 체온. 거기 있었겠지. 진의 숨결이 아직 살아 있을 거라는 확신이 목끝을 타고 내려갔다.
점심시간, 복도. 수진과 진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0.1초만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미소가 오갔다. 그 미소가 뒤늦게 내 가슴을 때렸다. 거기 있었어. 수진의 겨드랑이, 진의 눈빛.
사내 한식당, 수진이 국물을 쏟았다. 진이 먼저 냅킨을 건넸다. 수진은 이를 악물고 웃었다. 진은 그 미소에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 눈길을 놓지 못했다. 냅킨이 닿는 순간, 수진의 겨드랑이에 진의 체온이 스며들었다. 거기 있었겠지. 냅킨에서 풍겨온 냄새.
밤마다 나는 수진의 겨드랑이를 더 깊이 파고들었다. 침대 위, 그녀의 몸 위로 엎드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여기에 누군가의 냄새가 배어 있지 않을까, 하는 끔찍한 희망. 땀, 냄새, 체온이 섞여 있는 그 지점. 나는 혀를 내밀어 스쳤다. 짠맛이었다. 짠맛 속에 다른 짠맛이 겹쳐 있었다.
수진은 요즘 나와 함께 떡볶이를 먹는다. 예전보다 맵게 시킨다. 땀을 흘리며 웃는 그녀의 입술이 번들거린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서 진의 숨결이 떠오르는 걸 막지 못한다. 그날 이후 수진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겨드랑이에선 아직도 진의 체온이 살아 있었다.
침대 맡, 어둠 속에서 나는 수진의 겨드랑이를 다시 맡았다. 땀, 냄새, 체온이 섞인 그 지점. 거기 있었겠지. 나는 숨을 멈췄다. 그 냄새를 끊지 못한 채, 나는 침묵 속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