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참고 또 참았지만, 나는 이미 깨져버렸다

결혼 5년 차 도연이 야근 사무실에서 인턴 지한얼과 마주친 순간, ‘참음’이라는 마지노선이 부서지는 17금 심리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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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또 참았지만, 나는 이미 깨져버렸다

휴게실 복도 끝, 냉장고 앞에서 지훈이 나를 붙잡았다. 너 오늘따라 눈이 흔들린다. 눈이 아니라. 근데 계속 흔들려. 그가 내 손에 들린 종이컵을 빼앗아 한 모금 마시더니, 부드럽게 물었다. 아침부터 숨긴 몸짓 위에서 말이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래, 지금 이게 끝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만 한 바구니씩 흘러넘쳤다.


눈앞에서 부서지는 규칙

참는다는 건 결국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일. 연애에서 ‘참음’은 ‘허락하지 않음’이라는 문장을 수백 번 되뇌는 행위지. 하지만 뇌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이게 언젠가 터질 거야.’ 그 예측은 망치처럼 머릿속을 두드리며 점점 선명해진다.

숨기는 욕망은 끈적한 그림자가 돼, 옷깃에 붙어 다닌다. 타인의 손길이 스칠 때마다 흔들리고, 짓궂은 상상이 번지며, 결국 ‘참음’이라는 작은 둑은 터져버린다. 그 터짐은 종이 한 장 차이. 하지만 그 한 장이 무너지면, 그동안 꽁꽁 숨겨온 모든 게 쏟아진다.


유리 같은 도연

도연이 본부에서 일한다. 32세, 결혼한 지 5년 차. 그녀는 남편에게 ‘무조건 애인은 없다’고 누차 말해왔다. 그리고 본부에 새로 들어온 인턴, 26살 지한얼과 단 둘이 근무하는 야근을 맡았다.

오후 11시, 프린터 소리만 남은 사무실. 도연은 고개를 들었다. 지한얼이 서류 더미 너머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눈빛이 뜨겁다 못해 아픈 듯했다. 그는 한 걸음 다가와, 모니터 옆에 손을 올렸다. 손등에 핀 세모 혈관이 요동쳤다.

선배, 저 지금 뭘 참고 있죠?

...뭘?

선배가 저한테 눈 마주치지 않는 걸.

도연은 모니터 뒤로 고개를 숙였다. ‘충분히 참아왔잖아, 도연아. 지금까지 다 버틴 거야.’ 그러나 그날밤, 그녀는 책상 위 키보드를 미끄러지듯 밀어버렸다. 남편에게서 오는 밤새 메시지도, 결혼반지도 잊고. ‘참음’이란 말은 그 장소에서 완전히 삭제됐다.


흠집 난 용기

다음 날, 도연은 거울 앞에서 붉어진 목덜미를 숨기느라 고개를 꺾었다. ‘내가 망가진 건가?’ 3일 뒤, 그녀는 지한얼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시는 안 돼. 근데 다시는 안 돼, 그게 맞아?

답장 대신 지한얼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왔다. ‘또 참고 있죠?’ 그 한마디에 도연은 부서졌다. 그녀는 아침부터 상점을 찾아가 새 우산을 샀다. 이유 없다. 그냥 우산 손잡이를 꼭 쥐는 순간, 스스로에게 ‘지금부터 다시 참는다’고 약속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알게 됐다. ‘나는 이미 깨져있었고, 다시 붙일 수 없는 조각이었다.’


복도 끝 3초

퇴근길, 도연은 우산을 든 채 복도 끝에 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사이, 지한얼의 뒷모습이 스쳤다. 1초, 2초, 3초—그 짧은 시간 동안 우산 손잡이에 힘이 들어갔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힘이 풀렸다. 우산은 바닥에 떨어졌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떨어진 우산 위로 형광등 불빛이 흔들렸다. 아무도 그녀가 눈을 감았는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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