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 사진을 3천장 넘게 긁어냈다
“이건 예술이야, 수진아. 네가 감사할 줄 알았어.”
희미한 모니터 불빛 아래, 그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내가 찍힌 사진들이 띄엄띄엄 쌓인 폴더. 수영장에서 트레이닝복으로 찍은 것, 잠옷이 흘러내린 것, 심지어는 화장실에서 셀카로 보낸 것까지. 그것들이 모두 한 명의 ‘나’로 합성되는데 걸린 시간은 단 27분. 지금껏 내가 그의 카메라에 숨긴 틈새 하나하나가, AI의 알고리즘이 휩쓸어가는 순간이었다.
욕망의 해부
내가 진짜로 분노했던 건, 내가 예상보다 훨씬 ‘예쁘게’ 벗겨졌다는 사실이었다.
딥페이크란 단어는 처음엔 흐릿했다. 그냥 ‘좀 이상한 앱’ 정도로만 들렸다. 하지만 내 눈동자가 포착한 건, 나의 가슴골이 너무나 섬세하게 드러난 4K 이미지. 눈썹 털 하나까지 뚜렷했다. 그 희고 반짝이는 피부는 현실의 내가 아니었지만, 동시에 내가 될 수 있는 ‘잠재적 나’였다. 내 남자친구는 단순히 벗겨낸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했던 순간을 먼저 떠올렸다. 그걸 본 순간, 무언가가 고장 났다. 나는 화가 나야 했는데, 가슴 한구석이 달아올랐다.
첫 번째 사례: 예린, 29세
예린은 오피스텔 거실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음산한 LED 간판이 번쩍이는 새벽 두 시. 그녀의 남자친구 재혁은 맥북 앞에 앉아 조용히 중얼거렸다.
너도 나만큼 신경 쓰지 않았을까?
그는 예린의 인스타그램을 2019년부터 역순으로 다 긁어서, ‘연애 초창기’ 표정을 학습시켰다. 그 표정을 토대로, 결국 예린이 새하얀 래시가드만 걸친 채 파도에 휩쓸리는 영상을 만들어냈다. 영상 속 예린은 현실에서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투명한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그는 그걸 USB 하나에 담아, 생일 선물이라며 건넸다.
예린은 그걸 처음 봤을 때, 손에 든 USB가 50도쯤로 뜨거워진다 느꼈다. 분노가 아니라, 그 USB에 담긴 ‘나’가 너무 완벽해서. 그녀는 결국 재혁에게 뱉었다.
“나도 봤어. 하루에 열두 번은.”
두 번째 사례: 주희, 34세
주희는 결혼을 앞둬, 남자친구에게 ‘마지막 선물’을 받았다. 블랙 리본으로 묶인 USB 카드. 안에는 그녀가 턱시도를 벗어던진 듯한 가상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처음에 웃었다. 허나 다음날, 그녀는 자기가 모르는 텀블러 계정에서 그 영상이 공유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댓글은 ‘어떻게 만든 거냐’에 불과했지만, 주희의 손발은 차가워졌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왜 내 몸을 남들이 엿보는 걸 괜찮아?
그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며 답했다.
다들 너의 눈부신 각선만 봤잖아. 질투할 거야.
결혼식은 취소됐다. 주희는 나중에 털어놨다.
그건 내가 아니었는데, 왜 내가 창피함을 느껴야 했을까?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인간은 디지털 신체가 된 순간부터, ‘고통 없는 벌거벗김’을 동경해왔다. 영화 속 완전한 CG 누드, 게임 속 캐릭터의 노출. 우리는 이미 ‘가짜’의 노출을 감당하도록 훈련되어 있었다. AI는 그 훈련을 개인의 삶으로 가져왔을 뿐이다. 남자친구들은 더 이상 ‘찍는’ 것에 만족하지 못해, ‘만드는’ 것으로 넘어간 것이다.
여기엔 두 가지 상반된 욕망이 스미든다. 첫째, 나의 신체를 온전히 지배하고 싶은 집착. 둘째, 그 신체를 대중 앞에 전시해 ‘자랑’하고 싶은 충동. 이들은 서로 모순되는 듯하지만,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난다. *‘네가 내 눈에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세상 누구에게도 아름답다’*는 자기확신.
그리고 다시 나에게
나는 아직도 그 폴더를 숨겨뒀다. 가끔은 모니터를 껐다 켜면, ‘수진_ver4.2.jpg’가 떠있을 때가 있다. 내가 현실에서 평생 가질 수 없을 그래픽스러운 몸매. 그리고나선 나는 늘 똑같은 질문을 한다.
그가 만들어낸 나는 나를 배신한 걸까, 아니면 나를 가장 잘 알아본 걸까?
누군가의 핸드폰 속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사진이 몇 번째 합성 중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너도 좋아할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