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17kg를 잘라낸 뒤, 그가 달아올랐다 — 사랑인가 허기인가

몸이 변한 순간, 남자들의 눈이 변했다. 뜨거운 시선 끝에 담긴 건 나 자체가 아닌, 갉아낸 살과 굶주림에 대한 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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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kg를 잘라낸 뒤, 그가 달아올랐다 — 사랑인가 허기인가

벨트를 두 칸 줄이던 날, 태준은 카페 테라스에서 내 손등을 덮쳤다.

“진짜… 너무 달라졌어.”

그의 손끝이 흔들리는 건 온도 때문이 아니었다. 17키로가 사라진 내 팔둑 위로 지나가는 시선은, 눈이 아니라 손톱 같은 것이었다. 살을 훑는 듯, 뼈를 세어보는 듯. 나는 그의 눈초리 속에서 처음 본 반응을 읽었다. 그리고 속으로 물었다.

당신이 원하는 건, 나일까 아니면 내가 조각낸 공기일까.


열광의 온도차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72kg였을 때, 태준의 시선은 늘 살짝 위를 향했다. 내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내 뒤편의 TV 화면에 눈길을 던지곤 했지.

작년 11월, 업무차 만난 상우는 더 솔직했다.

너 그런 체형이면 더 건강해 보여야 좋은 거 아니야?

그가 내민 아메리카노는 연한 디카페인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서 카페인마저 뺐고 싶다는 뜻이었나.


한 입 덜, 한 뼘 더

그가 좋아하는 건, 내가 아니라 ‘됨’의 지점이었을까.

몸매가 바뀌자 초대장이 쏟아졌다. 화요일 마트 주차장, 목요일 오후 헬스장 뒷문. 지하 락커룸에서 마주친 준혁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혜원 씨, 이번엔 진짜 같이 밥 먹을래요?”

나는 답하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준혁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느닷없이 웃었다. 눈가가 퍼지는 주름살 하나 하나가, 내가 17키로를 갉아먹은 날들을 계산하는 것 같았다.


사라진 그림자의 무게

그림자도 살이 되었을까.

거울 속 허리 라인이 또렷해질수록, 나는 더 초라해졌다. 예전 치마가 헐렁해지면서, 친구들은 축하했다. “이제 너도 시장이 넓어졌네!” 그러나 시장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상품이 되었다.

“혜원아, 오늘 모임 오지?”

누가 보면 어떻대. 난 이미 다 보여준 걸지도.


속삭이는 숫자들

그들이 읽어낸 건 키와 몸무게가 아니었다.

바뀐 숫자는 ‘통제 가능’이라는 언어를 새겼다. 위를 조여서, 칼로리를 재서, 욕망에 굴복하지 않은 몸. 그 몸에 눈길을 주는 건, 동시에 자신의 방종을 용서하는 행위다.

그래, 너는 참고 살았지? 그러니까 이제 너를 먹어도 돼.


눈동자 속의 나, 눈동자 속의 허기

작년 여름, 3개월 만에 다이어트를 끝낸 뒤 모임에서 만난 경수.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혜원아, 진짜 대단하다. 이제 너도 ‘연애 가능’ 그룹이야.”

술잔을 내려놓으며 나는 웃었다. 연애 가능. 그 단어는 ‘사람 가능’보다 날카로웠다.

경수는 이내 볼펜을 꺼내 수첩에 뭔가를 그렸다. 봤더니, 내 어깨에서 허리로 내려가는 S자 커브 스케치였다.

“여기 요즘 뭐 먹어? 밥 먹으러 가자, 내가 쏠게.”

그는 ‘밥’이라 말했지만, 그 끝에 ‘너’가 생략되어 있었다.


우리가 끌리는 건 공허일지도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체중 감량은 죄책감을 대신하는 속죄의식이라고. 누군가를 갈망하면서, 동시에 배신의 쾌감을 맛보는 게임.

그들은 내가 얼마나 굶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뜨거운 걸까. 굶은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허기를 채울 수 있다 믿는 착각.


뒤틀린 칭찬

“혜원아, 너 진짜 예뻐졌다. 날씬해지니까 눈이 확 띄여.”

눈이 확 띄여.

그 말은, 예전엔 아예 없었던 눈이 지금 생겼다는 뜻인가. 아니면, 예전엔 눈이 전혀 닿지 않았다는 고백인가.


그림자를 잃은 사람들

그들이 원한 건 나 자체가 아니었다.

‘될 수 있었던’ 나, 혹은 ‘조금만 더 되면’ 나.

그 기대치 속에서 나는 실종되었다.


마지막에 던지는 말

그가 다가올 때, 너는 자신의 몸을 터치당하는가, 아니면 그의 허기를 만지작거리는가.

둘 중 어느 쪽이든, 그 손끝엔 이미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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