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머리맡에 남겨진 마지막 메시지
“은진아, 미안해.”
그가 귓가에 속삭인 건 새벽 두 시. 왜 하필 지금이냐고? 그건 10년 전 그녀가 들어야 할 말이었다. 휴대폰 속 첫사랑과 나눈 대화, 그 끝에 붙은 ‘사랑해’가 지금 와서야 미안하다니.
고개를 돌리자 민혁이 잠든 숨결이 차갑게 닿았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그날이 선했다. 결혼 10주년 여행길, 대만 타이베이 101타워 전망대. 아래로 내려다보는 도시의 불빛 속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민혁의 핸드폰을 열어버렸다. 암호 0423——그녀 생일이었다. 그 사실이 더욱 뼈를 에게 했다.
욕망의 발톱이 숨긴 진짜 상처
나는 왜 아직도 여기 있을까?
은진이는 민혁의 외도 사실을 안 그날 자정, 호텔 화장실 타일 위에서 복수를 계획했다. 지울 수 없는 사진과 문자를 친구에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즉시 이혼소송을 제기할 거다. 그러나 새벽 4시, 그녀는 대담한 생각을 했다. 아니, 그녀의 욕망이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끝내면 너만 손해야.
그날부터 복수는 느린 불로 타기 시작했다. 은진이는 민혁에게 더 다정해졌다. 아침마다 키스하고, 밤마다 그의 이름을 속삭였다. 민혁은 그것을 은진이의 용서로 착각했다. 실제로는 은진이가 그를 더 깊숙이 가두려 했던 것이다.
사실 같은 거짓말, 거짓말 같은 사실
지우개로 지운 선물
‘채원’이라는 이름은 처음엔 민혁의 동창이었다. 그녀는 결혼 전에도 그를 좋아했고, 결혼 후에도 마음을 접지 못했다. 지난 2022년 여름, 민혁은 퇴근길에 우연히 채원을 만났다. 둘은 술 한 잔 하기로 했고, 시간은 흘러갔다. 그날 민혁이 집에 온 건 새벽 2시였다.
은진이는 민혁의 속옷에서 채원의 머리카락 한 올을 발견했다. 그걸 빼내며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빨래는 내가 할게.”
그날 이후 은진이는 민혁에게 더 극적으로 헌신했다. 그녀는 사내에서도 ‘완벽한 아내’로 소문났다. 아무도 모르는 건, 그녀가 민혁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집착이었다. 그녀는 민혁이 회사 동호회에서 채원과 다시 마주치지 못하도록 교묘히 스케줄을 조정했다. 동시에 그녀는 민혁이 아는 척하는 모든 사람에게 채원의 과거를 흘렸다. ‘불륜녀’ 딱지 하나면 충분했다.
바다를 삼킨 섬
2023년 가을, 민혁과 은진이는 여수로 여행을 갔다. 바닷바람이 차가운 밤, 그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민혁은 갑자기 말했다.
“나 채원이랑 다시 만났어.”
그 순간 은진이의 심장이 터질 듯했지만,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 오랜만이네.”
민혁은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며 계속했다.
“우리 끝났어. 내가 먼저 끝내자고 했지.”
은진이는 속으로 웃었다. 아니, 울었다. 채원이 먼저 끝냈을지도 모르지만, 민혁이 그 사실을 알려줬다는 건, 그녀의 집착이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그녀가 죽인 건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그녀 자신이었을까?
왜 우리는 배신에 이끌리는가
당신은 언제부터 ‘나는 괜찮다’라는 거짓말을 연습했나요?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배신은 상처의 본질이 아니라 그 상처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방식이 더 지독하다고. 은진이는 복수를 위해 민혁을 놓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상처를 놓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민혁에게 집착했지만, 그 집착의 끝은 결국 자신을 가두는 것이었다.
우리는 금기를 깨는 순간, 그 금기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은진이는 민혁의 잘못을 잊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잘못을 부메랑으로 만들어, 민혁에게 돌려줬다. 그런데 그 부메랑은 돌아올 때마다 그녀의 가슴에 새로운 상처를 그렸다.
마지막 질문
민혁은 이제 밤마다 은진이의 등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매일 같은 말을 한다.
“은진아, 미안해.”
그러나 은진이는 알고 있다. 그 미안함은 10년 전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계속되고 있는 그녀의 복수를 향한 것임을.
당신은 잃어버린 10년을 되돌리고 싶은가, 아니면 그 10년을 완성하기 위해 계속 살고 싶은가?
은진이는 아직 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