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88년생, 너는 너무 순진해

30대 팀장이 20대 남자들의 순진한 믿음을 깨고 싶은 욕망. 그들의 첫걸음을 흔들고 아침이 되면 사라지는 여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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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같은 술집 화장실

"누나, 진짜 예쁘다." 준하가 말했다. 손등에 닗은 숨결은 술보다 뜨거웠다. 26년생이니 나보다 열두 살 어린 놈이다.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고치던 손이 잠시 멈췄다.

예쁘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날아왔다. 하나는 칭찬, 다른 하나는 도전장. 그 눈빛 속에서 흔들리는 불꽃은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숨겨진 질문이었다. 나는 너를 넘볼 수 있을까? 그 질문이 순수해서, 그래서 더 치명적이었다.


숨겨진 체온

그날 밤, 준하의 손끝이 내 손목을 스쳤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숫자 15가 차곡차곡 올라갔다. 문이 열릴 때쯤, 우리는 이미 서로의 체온을 알고 있었다.

침대 옆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그의 목뼈가 드러났다. 아직 군살 하나 없는 어깨, 툭툭 던지는 말투. 그러나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믿음이었다. 세상은 아직 그의 편이라는 믿음. 그 믿음을 깨고 싶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를 슬픔으로 다가왔다.


다른 방의 민수

두 달 뒤, 회식 뒷풀이에서 민수가 술잔을 기울였다. 28년생, 열 살 차이. 그는 신입사원이었고 나는 팀장이었다. 술이 오른 그가 중얼거렸다.

"이 회사가... 너무 어렵네요."

나는 대답 대신 그의 머리카락을 한 올 넘겼다. 손끝이 스르륵 내려가 볼을 감쌌다. 민수는 놀란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서 또다시 똑같은 믿음이 보였다. 이곳도 나를 용서해 줄 거야. 그 믿음을 부술 수 있을까, 아니면 나도 똑같이 흔들릴까.


믿음의 무게

왜 20대 남자인가. 그들은 아직 실수해도 괜찮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부럽다. 나는 그 미숙함을 맛본다. 그들이 주저하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순간들. 그 순간들을 밟고 오르면서, 나는 자신의 무게를 확인한다.

내가 이만큼 무거워졌구나.

30대 중반의 나는 실수를 용서받지 못한다. 그래서 아직 용서받는 존재들을 끌어당긴다. 그들의 젊음이 나를 기억하게 한다. 내가 한때 그랬음을, 그리고 그때를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음을.


거울 앞의 기억

준하와의 마지막 밤. 침대 머리맡에서 그가 물었다.

"누나는 왜 나랑...?"

나는 대답 대신 그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었다. 왜냐고? 네가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날 밤 나는 준하의 모든 것을 기억하려 했다. 눈가의 어린 잔주름도, 아직 굳지 않은 손톱도. 그리고 아침이 되자 나는 그를 떠났다.


금기의 맛

어떤 학자는 이런 욕망을 스트로파리스라고 부른다. 위험한 것에 대한 끌림. 나는 그 정의를 다르게 읽는다. 진짜 위험한 건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 내가 그들의 시작을 망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그들의 첫걸음을 흔든다. 그 순진함을 금이 가게 한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사라진다.


남겨진 온도

아침이 되면 침대는 식는다. 문을 나서며 손목에 남은 체온이 서서히 사라진다. 그 잔여열이 다음 누군가를 찾게 만든다. 이번엔 다를 거야라는 착각을.

하지만 매번 똑같다. 그들의 믿음이 깨질 때, 나도 조금씩 부서진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믿음이 깨지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 소리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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